아리스토텔레스는 불합리한 상황과 인간의 대립을 비극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뼈대로 생각했다. 이야기가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또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는 면에서 서사는 철학의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어제 공포 영화 <무서운 이야기2>나 <Phovia>를 보면서 공포영화에도 이런 ‘상황 설정’ 혹은 ‘세계 구축’이 통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 과연 공포 영화는 다른 서사와는 다른 원리에 의해서 작동하는 것인가?
<무서운 이야기2>는 보험사 창고에서 보험사기를 선별하는 두 직원의 얘기를 통해 세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첫번째 이야기 <절벽>에서 주인공은 친구와 함께 산에서 조난을 당한다. 구조를 기다리던 중에 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는데 하나는 주인공이 친구에게 빌린 채무 때문이고, 하나는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초코렛 바 때문이다. 채무는 둘이 서로 반목하게 되는 단초를 제시한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발전되지는 않는다. 뒤에서는 복선의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반면 초코렛 바의 경우는 이들이 서로 갈리게 되는 직접 원인이 된다. 생존의 기로에서 주인공은 초코렛 바를 혼자 차지하려고 하고, 결국 친구의 죽음에 죄책감을 가지게 만든다.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여행 중에 사고를 당한 세 여자가 나온다. 세 여자는 부상을 입고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산길을 헤매고 끝내 어떤 집을 찾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이들이 원치 않는 상황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그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깨닫게 된다.
세번째 이야기 <탈출>은 코믹판타지라고나 할까? 우연히 얻은 주문으로 ‘딴세계’로 들어간 주인공은 다시 탈출을 시도한다.
이 이야기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어떤 ‘불합리한 상황’을 생각할 수 있을까? 주인공를 쓸려내려고 하는 거센 역류를 생각할 수가 있을까?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분명 상황이 존재한다. 그 ‘상황’이란 것은 인물들이 서로 생존을 위해서 반목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그런 면에서 상황의 설정은 적절하다. 초반의 어색한 분위기는 대사와 연출의 탓이이라. 그러나 이후 전개되는, 주인공의 죄책감에 따른 공포가 고조되는 장면들은 이 상황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의자 뺏기처럼 자신이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밀어내야하는 세상과 영화에서 보이는 공포와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 사실 이 에피소드에서 ‘상황’이 특정한 ‘공간’에서 비롯된 것이고 보면 그 공간에서 벗어난 후에는 이 상황의 톤을 유지하기 위한 디자인이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다시 구조된 이후에는 공포를 조성했던 그런 상황의 톤이 깨지면서 공포심을 반감시킨다.
두번째 이야기에서도 특별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 상황에서 인물들은 생존을 위해서 고립된 곳을 벗어나야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역류’의 상황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처음에 설정한 공포를 조성하는 ‘공간’에서 쉽게 벗어난다는 것도 패착이다. 그러고보니 첫번째나 두번째나 공포를 조성하기 위한 설정의 무게를 너무 쉽게 간과한 것 같다. 이들이 공포를 만들어내기 위해 특별한 ‘상황’을 만들어내기는 했으나 그 ‘상황’에서 쉽게 벗어나게 하면서 공포를 희석시킨다. 두번째 이야기에서 여자들이 외딴집에 들어가는 순간 이야기는 이미 끝이 났으며 그 뒤의 이야기는 모두 군더더기일 뿐이다. 이는 비슷한 소재의 영화 <더 로드>에서 길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 단순한 구조에서 어떻게 여러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면서 공포를 배가해 나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불합리한 상황’이라는 설정에 가장 들어맞는 것은 세번째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갈등을 일으키는 것도 ‘딴 세상’이고 모든 갈등과 행동들이 이 ‘딴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벌어진다. 세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것도 세번째 에피소드다. 특히 전혀 개연성이 없는 상황을 코믹하게 풀어냄으로써 고유한 톤을 만들어 낸 것은, 감독의 이후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사실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이론을 의심케 하는 정황은 또 있다. 바로 미스터리. 여기에도 어떤 상황에 대한 묘사가 필요한지 불필요한지도 의문이다. 그건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