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영화의 네 범주에 비교하면 <우는 남자>는 어떤 영화일까? 아마도 세 번째 범주, '못 만들었으면서도 보는 이로하여금 자신감을 잃게 만드는 경우'일 것 같다.
미국에서 활약하는 곤은 청부 살인 중 실수로 어떤 아이를 죽인다. 이를 괴로워하는 곤에게 새 임무가 떨어진다. 아이의 엄마가 가지고 있는 계좌를 찾아내고 여자를 죽이기 위해, 곤은 자신을 버린 엄마의 나라 한국으로 온다. 여자를 미행하며 기회를 엿보던 곤에게 즉시 여자를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지지만 곤은 끝내 여자를 죽이지 못한다.
이후 조직은 곤과 여자를 함께 처리하기 위해 킬러를 보낸다. 경찰은 여자를 안가에서 보호하면서 여자의 남편이 곤에게 죽기전에 감춘 계좌를 찾아내려고한다. 그러나 안가가 기습을 당하고 경찰들이 몰살을 당한다. 여자가 살해당할 순간, 곤이 나타난다. 그러나 끝내 여자는 조직에 사로잡히고 곤은 여자를 구하기 위해 조직의 본부로 찾아간다. 모든 적들을 제거한 뒤 곤은 여자에게 아이를 죽인 범인이라며 자신을 쏘게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난감하게 되는 이유는, 이 영화가 모든 요소를 두르 갖췄음에도 이상하게 재미가 없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액션 영화들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 즉, 서사는 그저 배우의 멋진 몸과 액션을 담기 위한 그릇이라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 영화에는 감정을 고양시키기 위한 장치들이 너무나 많다.
영화 전반에 걸쳐 종종 펼쳐지는 곤의 사연은 구구절절하다. 한국에서부터 그는 아버지가 없는, 아버지로부터 버려졌고, 가난했고, 미국에 가서는 아마도 짐작컨데 미국의 아버지로부터 버려졌을 것이고, 어머니는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곤을 버렸다. 이렇게 모두에게 버림받은 존재로 곤을 설명하며 곤에게 어떤 감정의 아킬레스건을 만들어 놓는다. 다만 그 아킬레스건이 뚜렷이 어딘지를 모르겠다는 게 흠이긴 하다.
여자의 무엇이 곤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을까? 곤을 울게 만든 것이 결국, 자식의 화면 영상을 보고 오열하는 여자의 모습이었다는 것이 영화 에필로그처럼 나오긴 하지만 이 설명 역시 시원하게 해결해주지 않는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울음에 공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건 오히려 곤의 과거 탓이다. 보는 내내 곤의 복잡한 과거 중 여자와 공명하는 것은 무엇인지 계속 추적하게 되지만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은 없다. 이럴 때면 오히려 헐리웃 영화처럼 그저 주인공과 똑같은 일을 '우연히' 경험하게 만드는 뻔뻔함이 얼마나 영악한 짓인지 깨닫게 된다. 곤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공감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든 가족의 부재를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초래했다는 죄책감을 느낀 것일까? 자신을 버린 엄마와는 달리 자식을 향한 그리움을 감추지 못하고 허물어지는 여자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발견한 것일까?
곤이 스스로 고안한 마침표를 보면 곤의 감정의 대부분은 죄책감인 듯 싶다. 이 마지막은 곤이 상당히 고심을 하며 오랫동안 준비한 것이 틀림없다. 곤이 여자와 처음 마주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곤은 자신의 이름을 마크라고 가짜 이름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음성으로만 여자와 소통하는 '곤'과 아이를 죽인 '마크'가 둘로 나뉘어서 여자에게 인식된다.
그러나 곤의 결말이 결말 다웠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주인공이 죽었으니 결말이지 않겠느냐고? 아니다. 실은 갈등이 끝나야 결말이다. 중요한 것은 곤의 갈등이 무엇인지가 뚜렷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얘기하면 곤이 무엇을 하려는지가 뚜렷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곤은 여자를 구해주려고 하지 않나? 맞다. 그 단순 명쾌한 목표가 마지막까지 일관성 있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곤은 자신의 라이벌을 살려둔채 자살을 감행한다. 그 라이벌이 여자를 죽이는 임무를 알면서도. 너무나 간단하게 곤이 죽어가면서 여자를 살려달라고 라이벌에게 요구를 하고, 라이벌은 그 요구를 들어주지만 전혀 앞부분에 쌓아왔던 갈등의 무게와는 다른 결말이다.
더군다나 곤이 마지막에 보여주듯 속죄를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들, 갈등들이 좀 더 섬세하게 제시되었어야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속죄라고 생각을 했다면, 새로운 삶에 대한 가능성과 속죄의 길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라도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이 영화에서 곤이 선택한 결말은 그의 성격에서는 상당히 쉬운 결말처럼 보이기에 별다른 감흥이 없다.
결국은 많은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뚜렷하게 곤의 갈등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그리고 그 갈등의 불꽃을 보여줄 악역들, 그 악역이 표현하는 이 영화 속 세계의 상황들이 일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화는 갖은 요소를 다 갖춘 것 같지만 어느 것으로도 설득이 되지 않는 영화가 되었다. 그에 비하면 전작 <아저씨>의 경우는 주인공의 단순한 과거가 현재의 상황에 공감하게 하는 확실한 모티브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