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처음 읽은 건 아마 연극을 한다고 했던 그 무렵이었을 것 같다.
동아리 선배가 추천한 책이었을 것 같은데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그저 왜 극에 대해서, 그것도 '비극'에 국한된 얘기를 <시학>이라 불렀는지 그 배경만 이해하는 데에 그쳤던 것 같다. 하지만 이후에 영화에 대해 공부하면서 <시학>은 여러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거의 모두라고 할 수 있을만큼, <시학>은 모든 서사, 영화 이론서들의 바이블이었다. 마치 B급 영화들이 고전 영화들의 기술을 무단 복제하면서 오히려 고전 영화가 시시해지는 것과 같달까? 20년이 훌쩍 지나 읽은 <시학>은 그렇게 오래 알고 지냈던 친구 같았다.
대부분의 얘기들이 많은 책들에서 반복하며 만났던 내용들이다. 하지만 아주 뜻밖에 새로운 얘기들도 있다. 가령 '성격 보다 행동이 우선'이라는 얘기도 그렇다. 기존 이론서나 흔한 통념이 인물의 성격이 기본으로 구축이 되어 있어야 행동을 만들 수 있다는 식이었는데 <시학>에서는 그 반대로 성격은 없어도 되지만 행동은 꼭 있어야 한다고 한다. 또 비극은 영웅들의 오만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잘못된 통설이다. 비극이 관객에게 만드는 효과 - 연민과 두려움은, 너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사람이 저지르는 하마르티아(실수, 착오)에서 비롯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하마르티아에 대한 해설이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폴 리쾨르는 <악의 상징>에서 이 하마르티아를 '죄'라고도 설명한다. 그렇게 본다면 신의 대척점에 있는 인간, 특히 제가 잘 난 줄 알고 신의 자리까지 넘보는 영웅의 오만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과 비슷한 사람의 추락에서 느끼는 연민과 사소한 실수가 초래한 엄청난 결과를 자신도 맞닥뜨리지 않을까 염려하는 두려움의 정의에 따르면 '영웅의 오만'은 조금 빗나간 정의인 것 같다.
<시학>은 폴 리쾨르의 <시간과 이야기>를 읽다가 여기서 계속 인용하고 있기에 보게 되었다. 하도 유명해서 읽지 않아도, 혹은 다 잊어버려도 읽은 것처럼 여겨지는 명작들을 하나 둘 만나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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