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이데거와 현상학 개론서를 읽고 있다. 현상학에서 비롯된 실존주의에 대한 설명을 보면 영화야 말로 인간의 실존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서사에는 '세계 안의 존재'인 현존재 즉, 인간이 나온다. 그는 하이데거가 말하고 있듯이 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로 여러가지 환경의 제약을 받고 있다. 인간은 제약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여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가능성을 인지하고 이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현존재의 '실존'이라는 것이다. 서사의 주인공이 딱 그런 인간이다. 그는 여러가지 제약을 받고 있지만 그 제약에 휩쓸려 가지 않고 그 제약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나간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요즘 영화에서 이런 인간의 '실존'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극히 드물다.
<차이나타운>의 소재는 그런 이야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계급의 가장 밑바닥-사물함에서 발견된 아이 일영은 철저하게 환경에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이다. 그가 해야하는 모든 범죄들은 그의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일영의 갈등은 이런 상황과 전혀 다른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면서부터 발생한다.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만난 석현에게서 다른 삶을 본 일영은 엄마라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마음에 품기 시작한다.
이런 식의 이야기들은 꽤나 흔하다. <레옹>도 그랬고, <아저씨>도 이렇게 자기 세계에 극단적으로 갇혀 있는 사람이 누군가의 만남을 통해서 다른 삶의 가능성에 자신을 내던지게 된다. 하이데거의 용어로 '기투project'다. 이런 영화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 불을 지피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런 '다른 삶'의 가능성에 있을지 모르겠다. 룸펜으로 보이는 킬러가 소녀와의 사람에 빠진다. 전당포 주인이 정의를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건다! 자신이 삶에서 기도하지 못하는 다른 삶을 대리 경험케 한다는 의미에서 이 경우에도 영화는 판타지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
그럼 <차이나타운>은 어떨까? 그런 판타지를 충분히 만들어내고 있을까? <레옹>과 <아저씨>의 여성 버전이라 내심 관심을 가졌지만, 개연성 없는 감정들 때문에 설득력 있게 펼쳐내지 못한다. 우선 석현과 일영과의 감정선이 그렇다. 아저씨와 레옹 모두 가냘픈 대상을 보호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연민이 이해가 되지만, 일영의 경우에는 석현에 대한 그 마음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석현에게 끌리는 일영의 모습은 그 앞에 보인 여러가지 일영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애들을 인질로 삼고 돈을 뜯어내도 눈 하나 끔뻑하지 않았던 일영이 어떻게 석현에게는 금새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걸까? 그 첫 단추가 뒤틀리고 나니 이후에 전개되는 것이 전혀 감정이 살아나질 않는다.
배우들 모두 연기가 아까운 영화다.
시놉시스
1. 지하철 사물함 10번에서 발견되어 일영이라고 이름이 지어진 소녀가 있다. 어릴 적부터 강단이 세서 엄마의 눈에 들었다. 스무살 남짓 된 일영이는 이제 엄마 슬하에 남겨진 오빠 우곤의 자리까지 넘보는 일머리를 자랑하고 있다. 일영이 마작 놀음판에서 돈을 뜯어내는 활약상이 펼쳐진다.
2. 엄마는 빚을 지고 필리핀으로 떠난 남자의 아들 석현에게 빚을 받아오라며 일영을 보낸다. 일영은 석현의 살가운 행동에 당황해 돈을 받아오지 못한다. 일영과 함께 엄마에게 들어온 쏭은 독립한 오빠 치도로부터 마약을 투약하고 있다. 다음 날 일영은 석현에게서 돈을 받으러 갔다가 석현과 데이트를 한다. 밤늦게 돌아온 일영은 엄마의 제사에 참여한다. 엄마는 자신의 엄마를 죽였단다.
3. 일영이 처음으로 여자 옷을 입은 날, 우곤은 석현에게 경고를 하고, 엄마는 일영을 데리고 석현의 집으로 가서 석현을 죽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영이 석현을 데리고 도망치려는데, 결국 엄마 일당에게 잡히고 만다. 엄마는 석현을 죽이고, 일영을 일본으로 팔아버린다.
4. 일본으로 팔려가는 배에 타기 전, 일영은 치도의 한쪽 눈을 베고 탈출을 한다. 엄마에게 눈 값을 물어내라고 땡깡을 쓰는 치도는 결국 엄마에게 복속한 조직원들의 칼을 맞고 죽는다. 엄마는 일영을 죽이기 위해 삼촌을 고용한다.
5. 일영은 우곤에게 돌아오는데 장애를 가진 조직의 동생 홍주가 일영을 죽이려고 하는 바람에 우곤과 홍주 모두 죽는다. 그러나 일영은 삼촌에게 잡힌다. 삼촌이 일영을 죽이려는 순간 일영이 삼촌을 죽이고 엄마에게로 향한다. 마지막 엄마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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