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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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2016. 3. 4. 21:09



“아이를 키우는데 모든 마을이 필요하다고? 아이를 추행하는 데도 모든 마을이 필요해.” 

취재를 막 시작한 기자에게, 이를 미덥지 않게 여긴 변호사가 한 이 말은 영화의 주제를 오롯이 담고 있다. 보스턴 시내 1500명의 신부 중 6%인 90명이 수십 년간 아동성추행을 벌이고 있어도 어떻게 공론화되거나 기소가 되지 않았을 수 있었을까? 영화가 아물지 않은 상처를 조심스럽게 벗겨낼 때 만나게 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사려 깊은 얼굴들이다. 


변호사는 자기의 직업윤리에 따랐을 뿐이고, 피해자에게 희생을 강요한 다른 신자들은 교회의 명예를 염려했을 뿐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그동안 그 수많은 제보들을 묵살한 장본인이 밝혀지는 순간조차도 흔히 영화에서 나오는 인면수심의 악의 대리인이 아닌, 그저 무관심했던 기자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영화는 다른 사회고발성 영화처럼 거대한 악을 그리지 않는다. 피해자의 환부를 까발리지도 않고 거악에 맞서는 영웅의 용기를 상찬하지도 않는다. 대신 거악과 영웅의 사이에서 사라져버리곤 했던 평범한 악과 소박한 윤리의 흐릿한 경계에 집중한다. 영화에서 사건을 은폐하려는 변호사나 신부조차도 한때 정의감에 불타 언론과 사법 당국에 호소했던 전력이 있는 것처럼, 언론도 완전히 침묵을 했던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가볍게나마’ 다뤘던 것처럼 대부분의 평범한 악은 면피용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 그들 나름으로는 ‘할 만큼 했던’ 셈이다. 


영화가 끝나면 실제 모티브가 됐던 사건의 개요가 흐른다. 90명이었던 숫자는 기소된 인원만 25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혹 이런 걸 보고 개신교에서 가톨릭에 대해 손가락질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들은 영화를 볼 필요도 없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진행형인 얘기니까. 이 영화가 집요하게 쫓아가는 악의 평범성을 생각하면 나 역시도 자유롭지 않다. 묵직하게 돌을 하나 얹어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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