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황해> 봤다.
- 응? 나홍진 <황해>? 그걸 이제야 봤어?
- 원래 보고 싶지 않았는데 <곡성>이란 영화가 나온다지 뭐야. 입소문이 좋더라고 그래서 워밍업 삼아 봤지.
- ㅎㅎ 영화보다 왜 보고싶지 않았는지, 그게 더 궁금하다.
- 뭐 알잖아. 쩝 세상에 감독이 많고 많은데 그런 감독 하나 없는 셈 치지, 뭐 다 챙겨 볼 거 있나 그런 거지 뭐.
- 이번 영화도 그렇게 스태프를 때렸을까?
- 글쎄 세상이 좀 변하지 않았을까?
- 세상보다는 전작이 그다지 흥행이 안 되었던 터라 기가 좀 죽지 않았을까.
- 그게 참... 그래 감독 기가 죽으면 영화에 딱 테가 나거든. 감독들이 기가 살아야 영화도 잘 나오는 건데... 그렇다고 저런 건 싫고.
- 기가 산다라... <황해>가 딱 그짝이지? 어땠어?
- 응 그렇게 생각하고 봐서 그런지 왠지 그런 거 같더라고. 뭐랄까. 감독이 하고 싶은 거 다했구나. 그런 거지.
- 거칠 것이 없지.
- 그러게. 너무 그러다 보니까 비어 있는 게 너무 많더라고.
- 뭐가 비어 있는 거 같은데?
- 일단은... 감정이 비어 있어.
- 그렇지. 막 쫓기고 쫓고 그러는데 긴장감은 느껴지는데, 또 싸울 때 아드레날린은 분비가 되는데, 그냥 그것 뿐이지.
- 응 도대체 감정이입할 대상이 없는 거야. 딱히 하정우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도 아니고.
- 왜 그럴까? 악당이 주인공인 영화가 처음인 것도 아니고.
- 그렇긴 하지. <보니 앤 클라이드>도 그렇고 선악의 경계 이쪽에 가 있는 주인공들 꽤 많지.
- 주인공이 매력이 없어서 그랬을까?
- 사후 판단이긴 한데, 애매했던 것 같아. 주인공인 하정우에게 연민이 가게끔 할지, 아니면 선악을 초월한 자유로운 인간으로 설정할지 말야. 본의 아니게 돈 때문에 극한까지 몰린 캐릭터이긴 한데 상황과 윤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캐릭터는 또 아니거든. 처음 동기는 아무래도 아내를 찾겠다는, 멜로 코드인데 그것도 중간에 어이없게 사라져 버리고 말야. 중반 이후에는 자기를 곤경에 처하게 한 이들에 대한 복수로 바뀌고.
- 그렇지 보통 갈등은 주인공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건데, 하정우의 경우는 그냥 상황에 떠밀려 새로운 갈등 상황에 놓이는 거지. 그런데 난 이런 평을 들으면 항상 그런 질문이 생겨. 현실에서는 말야. 현실에서는 이런 인물이 없을까? 오히려 이런 인물, 상황에 따라 자기 의지와 선택이 바뀌는 인물이 분명 있을 텐데, 영화가 그런 인물을 담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건가?
- 뭐 그럴거야. 현실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더 많겠지. 이 영화를 좋게 본 사람들은 아마도 그 의지 없음. 결국 정해진 종착지도 없음에 환호했던 게 아닐까? 그런데 대부분의 관객들 말야. 나 같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는 더 많은데 굳이 영화에서까지 볼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영화라는 게 말야. 한 인물의 전사에서 아주 일부분만 반짝하고 들춰내서 2시간 안에 보여주는 거잖아. 그러면 우유 부단하고 비윤리적인 인간이라고 해도 그런 평상시의 모습에서 조금 달라진 결기가 느껴지는 순간들을 담아야 하는 거 아닌가?
-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네. 그런데 좀 답답한 느낌도 들고. 나도 뭐 내 취향은 아닌데, 그런 건 있었거든. 아주 원 없이 죽이고 때려 부수는 구나. 영화가 이런 영화도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 그렇게 따지면 뭐 모든 영화가 다 나름의 존재 이유는 있지. 왜 저런 영화가 되지 않느냐고 묻는 건 너무나 쉬운 질문이니까. 하지만...
- 하지만 뭐?
- 뭐 아니야. 아, 그런 느낌도 있다. 왜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라는 얘기가 있지? <보니 앤 클라이드>나 <내츄럴 본 킬러>의 주인공들은 미친놈들이 분명하지만 곱게 미쳤달까? 나름의 규칙도 있고, 세계관이 있는데, 여기 주인공들은 그저 좀비 같아. 조금 빠른 좀비들. 다른 말로 하면 사이코패스랄까? 그건 김윤식만이 아니라 하정우도 그렇고 여기 나오는 인물들이 다 그래. 심지어는 죽는 사람들도 그래요. 아까 뭐가 비어 있다고 했는데 '피해자'가 없는 거지. 유일한 피해자가 하정우의 아내일텐데, 이야기와 화면에서 철저하게 배제가 되잖아.
- 음... 피해자가 없는 스릴러라. 뭔가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곡성>은 어떨 거 같아?
- 그건 좀 기대가 되는데 예고편을 다시 생각해보면 거기도 딱히 피해자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안 보이는 거 있지? 참 독특하데. 심지어 난 그런 생각도 했어. 감독이 이렇게 슬래셔를 좋아하는데, 첫 장편 <추적자>에서 서영희는 그냥 소품이었구나, 싶은 거지.
- 서영희의 존재감도 아슬아슬했지. 그래도 그 캐릭터 때문에 장르가 명확해졌는데 말야. <곡성>은 <추적자>보다는 <황해> 쪽일 거 같다는 얘기지.
- 응 그럴 거 같아.
- 그래도 볼 거 아냐.
- 응 봐야지. 봉준호가 시사회에서 보다가 급체를 했다니까.
- 그래? 그거 홍보 전략 아냐?
- 그럴까? 그렇다면 너무 없어 보이는 전략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