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다시 읽는 성경

창세기 22~24장

자카르타 2016. 5. 4. 08:18

22장.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다.'

앞에서도 적었지만 아브라함은 흔들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삭에 대한 시험을 거친 뒤에야, 하나님은 '이제야'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겠다고 하신다. 이 장면은 언제 봐도 긴장된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버지, 낌새를 채고 묻는 아들. 이들은 산을 오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올라갔을까? 합리와 맹신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았을까? 여호와 이레, 예비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에는 이렇게 한편으로는 잔인한, 살떨리는 긴장이 담겨 있다. 

끝에는 이삭의 베필 리브가를 소개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소생들을 적고 있다. 나홀의 아내 밀가는 롯의 형제였다. 


23장. 

'아르라함이 당당히 원주민들에게 장지를 요구하다.'

이방인이 원주민에게 너무나 당당하게 - 어느 정도 겸손을 가장하기는 하지만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당당하게 요구한다. 그리고 원주민은 아브라함에게 '당신은 우리의 지도자'라며 그의 요구를 들어준다. 중동의 풍습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이방인을 환대하는 풍습만은 확실한 것 같다. 다음 장에 나오는 리브가와 아브라함의 종의 만남에서도 그런 모습은 볼 수 있다. 사라가 127세를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37세다. 사라는 아들의 결혼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백세에 낳았으니 이삭도 어느새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다. 


24장.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베필 리브가를 찾다.' 

기도를 하고 응답을 받는 과정이 재밌다. 하나님의 징표를 알기 위해서 스스로 어떤 룰을 정하고 그 룰에 맞는지를 확인한다. 이런 기도가 옳은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리브가의 아버지 할아버지를 만나 구구절절이 자신의 서원을 얘기하는 것으로 봐서 거짓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이런 얘기를 듣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라면서 자신의 딸을 순순히 내 주는 모습이다. 그리고 리브가는 열흘만 더 있다 가라는 부모의 청을 물리치고 바로 낯선 사내를 따라 간다. 그 뒤에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에서도 나오지만 리브가는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여성이었을 것이다. 나그네에 대한 환대와 자기 인생에 대한 확신. 야곱은 리브가를 닮았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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