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장
"야곱이 에서를 만나다."
항상 이 장면을 보면 그렇게 비정할 수가 없다. 가족을 세 등급으로 나누어서 방패로 삼을 사람들과 가장 안전하게 보호할 사람들을 구분하고 있다. 야곱이 제일 선두에 섰지만 그것만으로 이 차별의 구조를 감출 수는 없다. 이 시대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었는지, 참 씁쓸하다. 이 가정에서 이런 차별의 구조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35장에 보면 르우벤이 야곱의 첩 빌하와 동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본 빌하의 아들들, 르우벤의 형제들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34장
"디나가 성폭행을 당하다. 야곱의 복수"
세겜이 디나를 성폭행한 것 자체는 범죄가 맞지만, 여기에 대응하는 야곱의 아들들이 옳다고는 보지 않는다. 더구나 그들은 우호를 가장했다. 세겜측은 같은 민족이 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할례를 받는 모험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고통 속에 있을 때 이런 짓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 참 무법의 시대, 각자도생의 시대인걸 새삼 실감한다. 세겜이 디나를 성폭행 한 것과 관련해서는 얼마 전 읽은 글이 있다. 옛 중동에서는 결혼에 이르는 상당수의 경우가 강간을 통해서라는 얘기다. 실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중동의 눈으로 본 신약>이라는 책을 봐야겠다. 요즘 심심찮게 들리는 이슬람 권 뉴스를 보면 아주 없는 얘기는 아닌 듯 싶다.
35장
"라헬이 죽다"
앞서 32장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지만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가 비로서 여기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다시 뒤에서는 야곱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왜 일까? 다른 사람들은 개명 후 즉시 그 이름으로 불리는데 왜 야곱은 이스라엘과 야곱이라는 이름 사이에서 이렇게 호적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을까? 미스터리다.
이삭이 야곱을 만나고 죽었다는 걸 새로 알았다. 그럼 리브가는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까지는 리브가의 얘기는 나오지 않고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에 대해서만 기록이 되어 있다. 여선지 드보라의 이름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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