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다시 읽는 성경

창세기 37~39장

자카르타 2016. 5. 12. 08:54




37장

"형제들이 요셉을 팔아버리다." 

성경은 '그럼에도'의 연속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보잘것 없거나 심지어는 악행을 저지른 사람도 은혜로 복을 받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누군가의 흥망을 보면서 그의 전사와 엮으며 인과관계로 묶는 것은 종종 잘못된 해석을 낳게 한다. 

요셉이 형들에게 구박을 받는 일도 그렇다. 그 구박이 나중에 영광으로 이어진다는 세옹지마식의 해석은, 형들이 왜 같은 형제들을 미워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해석과 성찰의 여지를 없애고 만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따돌림을 받았던 것은 전적으로 그의 아버지 야곱의 탓이다. 특히 첩의 아들들이 더욱 심했다. 첩에 대한 야곱의 태도가 이런 결과를 부추겼을 게다. 꿈 꾸는 자가 왜 미움을 받았을까, 이 질문은 수정되어야 한다. 꿈 꾸기 때문에 미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현실 속 형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에 미움을 받은 것이다. 


이복형제이지만 정실에게서 낳은 르우벤과 유다는 요셉을 살리려고 했다. 아마도 첩과 정실 소생의 의견이 달랐을 것이다. 르우벤도 유다도 요셉을 살리려고 제 딴에 수를 썼지만 그것이 영뚱한 결과로 이어진다. 물론 이 일들이 합력하여 뒤에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상황을 긍정할 수는 없다. 모이지 않은 선한 의지는 종종 이렇게 일을 그르치고 만다. 


38장 

"유다가 다말과 불륜을 저지르다." 

37장과 39장 사이에 왜 이 이야기가 들어갔을까? 이 이야기도 상당히 (엉뚱하게) 유명한 사건인데 왜 들어갔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오나니즘의 기원도 있고, 유다가 며느리인 다말과 불륜을 저지르는 모습도 나온다. 요즘으로 치면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일일까? 성매매라는 점에서는 그렇겠지. 

형사취수제에서 벌어진 해프닝일까? 약속을 저버린 사람에 대한 경고일까? 모르겠다. 다말의 소생들이 야곱과 에서의 일화와 유사하게 반복되는 것도 흥미롭다. 그리고 손자를 볼 나이의 유다가 이후 39장 이후에서 벌어지는 이집트 여행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39장 

"요셉이 꿈을 해석하다." 

해몽가의 장기를 스스로 드러낸다. 이건 성장일까? 변신일까? 이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큰 변화다. 앞서 이어진 장면에서 요셉은 꿈을 꾸었지만 스스로 그 꿈이 무슨 꿈인지 해석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요셉은 꿈을 해석할 수 있다. 이 단계에 이르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풍상을 겪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꿈을 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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