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여자아이가 유괴당한다. 밤 사이 놓고 간 것으로 보이는 유괴범의 편지를 거실에서 발견한 부모는 바로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나 이내 소녀의 시신은 그 집 지하실에서 발견된다.
1996년 미국의 소도시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끝내 미궁 속에 빠진다. 그리고 수 많은 음모론이 이어진다. 엄마가 충독적으로 죽였다는 둥, 아빠와 소녀가 근친상간을 하다가 엄마에게 들켰다는 둥, 두 살 터울 오빠가 죽였다는 둥...
감독은 이 음모론 중에서 어떤 것을 고르는 도박을 하지 않는다. 대신 이 '각자의 진실'을 재료 삼아 멋진 아메리칸 퀼트를 만들어낸다.
상황은 존 베넷 램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 위한 오디션 장, 아빠 램지, 엄마 램지, 죽은 딸 램지, 오빠 램지가 되기 위해 모인 배우들은 각자가 추측하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재밌는 것은 램지 부부를 의심하는 이들도 딸의 죽음에 오열하는 부모의 연기에 진지하게 임한다.
다큐? 혹은 영화의 마지막 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아빠 램지들, 엄마 램지들, 오빠 램지들의 연기를 보면 그런 의문이 생긴다.
허위를 가장한 캐릭터를 진실하게 연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은밀하면서도 만연한 음모론과 스포트라이트 아래의 공론들이 공존하는 사회의 분열은 제대로 감지되고 있나?
교활할 정도로 감독이 영악하게 느껴지는 건, 오디션을 빙자한 다큐도 아닌, 극영화도 아닌 형식을 창조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완벽한 진실'에 대한 부담을 교묘하게 그리고 홀가분하게 벗어던졌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들 원하는 걸 만들어 줄줄 알고?'
그리고 서사의 능력 혹은 책임을 생각한다. 각자의 진실이 판치는 세대에 서사가 또 하나의 진실을 얹고 말 것인지, 아니면 이를 조망하는 또 다른 층위로 올라설 것인지. 그 아찔한 시도를 한 감독의 용기에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