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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나이트

(스포일러 가득) 원탁의 기사 무리에 들 조건은 단 하나. 썰을 가지고 있느냐였다. 아서 세대의 무용담이 전설로 굳어진 어느 크리스마스 날 찾아온 그린 나이트의 내기에 가웨인이 선뜻 응했던 것도 그 '썰'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내기의 내용은 간단하다. 가웨인이 그린 나이트에 선빵을 때리면, 정확히 1년 뒤 그린 나이트가 똑같이 갚아주는 것. 그린 나이트는 뜻밖에 순순히 목을 빼고, 오호 호재라! 선빵의 베네핏을 확실하게 누리려는 가웨인은 엑스칼리버로 그린 나이트의 목을 댕강! 이로서 1년 뒤의 채무 변제까지 노린다. 진정한 썰과 악몽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희희낙락하는 가웨인 앞에 그린 나이트는 자기 머리를 양손으로 받치고 1년 후를 기약하며 자리를 뜬다. 1년 사이 가웨인의 썰은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

리뷰/영화 2021.09.25

Placemakers

네덜란드 7개 지역의 도시재생 사례를 다룬다. 우리 도시재생 현장에서 '주민 참여'를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공공에서 세운 비전과 계획에 부응하는 '참여'만 인정되는 반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례들은 민간과 공공이 어떻게 합을 맞춰 나갔는지 설명한다. '하르레머 거리'는 지역에 대한 어떤 권한도 갖지 못한 개인 컨설턴트가 중심이 되어 골목 상권을 살린 사례다. 다년 간에 걸친 지역 활동으로 신뢰를 쌓아나갔고, 이제는 지역 임대인들의 그에게 컨설팅을 의뢰할 정도라고 한다. 최근들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부각되고 있지만, 쉽게 성공과 실패를 재단하지 않고, 도시의 생장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대안을 모색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두번째는 아른햄 패션 특화 거리다. 패션 관련 학교가 있어 상당한 인지도를..

리뷰/책 2021.09.12

D.P

새벽에 6화까지 보고 한동안 뒤척였다. SBS 뉴스에서 팩트첵크를 했듯이 드라마에 나온 가학이 일부 극단적인, 한때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라지만, 설혹 그런 극단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군의 폭력은 어디에나 만연했다. 이쪽에 있는 아름드리 나무를 뽑아다 다른 쪽에 옮겨 심으라는 명령처럼 어떤 부조리한 명령도 빛이 있으라는 신의 언명처럼 성실하게 이뤄지는, 늘 화를 참고 있었던 중간 고참의 인내에 촉수를 곤두 세워야 하는, 군대 좋아졌다는 말에 형벌을 유예받고 있는 느낌이었던, 권한을 가질 어떤 자격도 훈련도 받지 않은 일반 병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게 방조했던, 그래서 누가 선임이 되느냐에 따라 군생활이 좌지우지되었던, 너무 부조리해 마치 블랙 코메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던, 그래..

리뷰/드라마 2021.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