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
'재미'를 이론으로 정립할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모든 미학이 지향하는 바벨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섣불리 재미의 체계를 갖추었노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 책에서 '재미'의 원리를 깨달았다고 자부한다면 스키를 책으로 배울 때처럼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재미있는' 작품을 만드는 길에서는 점점 멀어지지 않을지.
그럼에도 이 책은 상당히 유용하다. 그 안에 재미에 대한, 그리고 재미를 본성으로 삼고자하는 모든 콘텐츠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라프 코스터는 형식(구조)와 내용(표현)의 긴장이 게임에도 마찬가지임을 강조하면서 현재 개발자들과 비평가들이 천착한 표현의 요소보다는 이에 가려진 형식과 구조를 통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게임 디자이너 벤 커즌의 용어 '유희소(ludeme)'라고 부르는 구성 요소들이 새롭게 디자인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유희소는 인간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다고 한다.
이 책의 원제가 'The Theory of Fun for Game Design'이지만 그의 통찰은 비단 게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가 재미있는 게임의 요건으로 지적한 '예측불가능성'과 '구조의 간결성'의 함수관계는 시나리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장르의 관습 안에서 관객들이 작품 전체에 대한 일정한 기대를 갖게하고 이것을 캐릭터와 주제에 대한 작가의 성찰로 전복시킬 때, 비로서 작품은 이전의 장르에서 벗어나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시할 수 있다. 게임에 대해서는 아주 젬병인 내가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건 이처럼 게임에 국한되지 않는 내용들 때문이다.
결국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매체인 게임이 그 가능성을 충분히 발현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층위가 감싸고 있는 심급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통찰력에는 당연히 철학과 인지 과학, 미학과 같은 인문학의 힘이 필요하다.
게임에 대한 세간의 눈총이 어느 때보다 따가운 이때, 규제의 강압과 편협한 옹호 사이에서 탁트인 전망을 제시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