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경제다
오래 전 부산의 정책을 개발하는 담당자가 술자리를 빌어 한 말이다. '솔직히 나는 부산이 쫄딱 망했으면 좋겠다. 어떤 좋은 정책이라도 개발 이익에 눈이 먼 사람들 때문에 좌초하고 만다.'
그 후로 그분을 본 적도, 관심 있게 부산을 들여다보지도 못했지만 그건 먼 부산의 얘기만이 아니다. 내가 사는 서울 광장동 사람들, 멀리 볼 것도 없이 종종 마실 오시는 어머니 친구분들을 봐도 그렇다. 집 가진 분들은 한 입으로 좌파가 집권해서 세금 폭탄을 때리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고 삼성 직원인 아들을 둔 노모는 재벌이 뭘 잘못했다고 그러느냐고, 이건희를 집안 어른 대하듯 한다. 교회 친구 어머니는 선거때만 되면 빨갱이들이 나라 말아먹는다느니 집값이 떨어진다느니 입에 거품을 무셨다. '어머니 집값이 떨어지면 더 싼 값에 더 좋은 집 살 수 있잖아요' 그렇게 얘기하라고 했더니 친구가 당장 써먹겠다고 했다. 그 친구가 그걸 써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달라진 건 없을 게다.
선대인 소장의 '문제는 경제다'는 영화보다 재밌는 경제 서적이다. 저자는 오늘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열거하면서 그 패착의 원인을 분석제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비전을 제시한다.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들 중에서도 가장 공들여 설명하는 것은 부동산 거품과 재벌 개혁에 관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공교히 유지하고 있는 기득권들이 언론을 통해서 주장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것인지 그 허위를 낱낱히 까발린다. 고용과 분배 없는 성장을 통해서 그나마 알량한 성장이 어떻게 재벌에게 편중되어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을 통해서 피라미드의 밑바닥의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 한 줌의 사람들에게 역류하게 되었는지, 그 결과 우리 사회는 현재 얼마나 불평등한 구조, 위기의 문턱 앞에 서 있는지를 미주알 고주알 설명해 준다.
총 3부로 되어 있는 책의 말미에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주장한다. 앞에서 오늘의 현실을 들여다볼때는 암담하기만 한 것이 전혀 대안 없음이 아니라는 사실에, 지금 나로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안도하고 꿈 꾸게 한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가오는 선거에서 우리가 정말 어떤 정책을 지지하고 반성해야하는지를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피곤한 일이다. 개인이 이런 거시 경제에 대해 반추해야만 하다니.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열매를 누리고 감사히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거시 경제와 구조 때문에 나는 다음 달 이사를 하고, 청년들은 졸업과 함께 신용불량자가 된다. 우리에게 미치는 크고 작은 파도들이 누구의 날개짓에서 나온 것인지 알아야 할 이유다. 다행히 그 날개는 나비처럼 작지 않다.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아니 눈만 가리지 않는다면 빤히 보이는 곳에서 밤새서 펄럭이고 있다. 저자의 수고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