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페이스 블라인드

자카르타 2012. 5. 9. 16:58


페이스 블라인드 (2012)

Faces in the Crowd 
8.6
감독
줄리앙 마그넷
출연
밀라 요보비치, 사라 웨인 칼리즈, 마이클 쉥크스, 줄리언 맥마흔, 샌드린 홀트
정보
범죄, 스릴러 | 미국, 프랑스, 캐나다 | 102 분 | 2012-06-21
글쓴이 평점  




'무서운 이야기'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재료는 뭘까? 주인공이 속수무책으로 놓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할 테고, 그 주인공에게 관객이 감정을 이입하도록 하는 것이 또 있어야겠다. 말이 쉽지. 이것이 흔히 말하는 상상력과 연출력이 바라는 궁극의 목표다. 그런 면에서 <페이스 블라인드 Faces in the Crowd>는 아쉬운 영화다. 주인공에게 '안면인식장애'라는 훌륭한, 충분히 두려울 만한 '상황'을 만들어냈음에도 그만큼 주인공에게 관객이 몰입하게 하는 데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예언자' 같은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것처럼 '얼굴'이란 바코드와도 같아서 적인지 친구인지를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그런 '얼굴'을 인식하고 구별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딱 그만큼의 긴장을 가지고 있다. 도시를 흉흉하게 만들던 연쇄살인범은 자신의 범행 현장을 목격한 증인인 주인공에게 시시각각 다가오고 주인공은 살해범은 커녕 자기 아버지의 얼굴조차 구별하지 못한다. 이런 설정은 최근 본 <줄리아의 눈>이나 <블랭크>와는 또 다른 긴장 상황을 만들어 낸다. 시각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주인공의 무력한 상황을 소재로 이용한 데에 반해 '안면인식장애'는 거기에 더해 '인식의 한계'에 대해서, '친밀함 혹은 애착과 적대감의 본질'에 대해서도 다룰 수 있는 인물 내면의 갈등과 고민을 담을 수 있다. 영화에서도 그런 인물의 갈등을 몇 차례 드러내기는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영화의 주된 갈등은 이러한 내면의 갈등보다는 설정 자체에서 오는 긴장에 크게 의지한다. 

아쉬운 대로 마음껏 상상을 해본다. 이런 소재로 더 좋은 서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갈등을 사용할 수 있었을까? 우선 패착을 따지자면 연쇄살인범이란 소재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들이 살인범이 그토록 엽기 행각을 할 수 있었던 이유, 미스터리를 캐내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는데 반해 이 영화는 그런 의문 자체를 봉쇄한다. 이 영화에서 연쇄살인범이란 그저 그런 클리셰에 불과하다. 이렇게 쓸 바에 오히려 주인공 애나의 주변 인물과 그가 속한 주변 관계에서 대적자를 고르고 갈등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오로지 얼굴로만 구별되는 '익명성'을 부여해야했기 때문에 이렇게 베일에 가린 '연쇄살인범'이란 인물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다른 서사를 상상해 본다. 가끔 누군가의 험담을 할 때 그 사람이 곁에 있어 깜짝놀랐던 경험이 있지 않나? 익명의 존재보다 오히려 가까운 적대자들과 벌이는 갈등들. 그만큼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나의 약점을 가지고 접근해오는 공포. 그런 공포를 다룰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영화에서 연쇄살인범이 애나에게 집착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면이 있다. 영화에서 밝히는 유일한 이유는 '연쇄살인범'이 자신의 치부를 들키고도 안전한 유일한 사람이 '애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안면인식장애'는 애나의 '목격'이 '인지'나 '기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건데, 애나의 동거인 브라이스가 애나를 떠난 것도 그때문인데. 이런 부실한 수용(용납)을, 연쇄살인범은 그토록 반겼던 것인지 의문이다. 그저 이런 설명은 딱히 와닿지 않는 궁여지책으로 보일 뿐이다. 소재가 훌륭한 만큼 곧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다른 서사를 기대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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