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엔터 노웨어 Enter Nowhere

자카르타 2012. 5. 11. 19:03



★★ 


작가들은 관객과 두뇌게임을 벌인다. 아니 이런 말은 공평하지 않다. 그 게임은 대부분 관객들 일방의 요구에 따른 것이고, 감독들은 그 판에 들어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만 한다. 관객들의 요구는 거의 불공정 약관의 극치를 보인다. 이미 관객들이 경험한 익숙한 서사를 벗어나야 하며, 그러면서도 친근한 장르 안에 머물러야 한다. 간혹 장르를 벗어나려는 감독들은 새로운 아류들을 추종세력으로 거느릴 수있을 만큼 탁월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몇몇을 예외로 놓는다면 대부분의 감독들은 이 불공정한 계약을 수용하고 작품에 임한다. 영화 <엔터 노웨어>는 그런 계약을 충실히, 아주 저예산으로 성취해 낸 '착한 영화'다. 

딱히 누가 주인공이랄 수 없는 세 인물이 어느 산골의 오두막에 모인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이들은 각각 차가 비탈에 처박혀서, 기름이 없어서, 남친이 싸우고 도망쳐서.. 등등의 핑계를 가진다. 그러나 이들의 '동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금새 산산조각 나고 만다. 이들이 길을 잃었던 곳도 제각각이고, 이들이 살았던 시대도 모두 다르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환상특급'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보면 참 익숙한 서사다. '더 로드(Dead End)'처럼 죽은 망자들의 모이는 경우도 있고, '큐브'처럼 어떤 절대권력이 이들을 감시할 수도 있다. 또는 불가항력을 외계인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만약에 이 영화가 이러한 결과로 귀결되었더라면 그저그런 케이블용 영화가 되었을지 모른다. 감독은 어떤 개연성에 대한 서술도 이러한 설정의 뿌리를 흔들 것이라는 것을 잘 아는 듯.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고 상상력을 펼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면서 관객을 단순한 퀴즈 참여자에서 감정의 공감자로 바꿔버린다. 

부족한 면이 있다면 그 '필연'에 대한 설명 이후에 그와 함께 제시된 '뒤늦은 미션'이 그다지 어렵게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극 후반의 긴장감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만다. 그러나 '맨 프롬 어스' 이후에 한 장소에서 진행되는 저예산의 이야기에서 더 큰 무언가를 바라는 게 과욕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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