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2007)
7.9
내가 영화를 고르는 기준은? 감독의 전작이 나름 괜찮았던 데다, 아는 사람이 스태프로 들어갔다면 거의 그냥 본다.
이 영화 역시 그렇다. 양윤호 감독의 '바람의 파이터'를 재밌게 본 데다, 인남이가 미술감독으로 들어갔다길래 봤다. 아, 한가지 더 있었다. 크랭크 카메라를 썼다는 거.
크랭크 카메라는 손으로 레버(크랭크)를 돌려서 찍는 카메라다. 요즘이야 일정한 속도를 내려고 모터를 쓰지만 옛날에는 모두 이런 카메라를 썼단다. 영화를 찍으려면 크랭크를 카메라에 꽂아야 해서 '크랭크 인'이란 말이 영화 촬영을 시작한다는 관용어로도 쓰인다. 하여튼 이 크랭크카메라의 특징은 손으로 돌린다는 데에 있다. 촬영기사가 신이 아닌 다음에야 돌리는 속도가 들쭉 날쭉하기 마련이고, 노출도 오락가락해서 현상을 하고 보면 번쩍번쩍, 빨랐다 느렸다하는 영상이 만들어진다.
덴젤 워싱턴이 나온 <맨 온 파이어>에서는 이 카메라를, 워싱턴의 내면을 묘사하는 데에 썼다. 아마도 시나리오에 '총을 부여잡고 괴로워 하는 워싱턴', '주위를 둘러보면 혼란스러워 하는 워싱턴...' 이렇게 묘사되었을 것 같은 장면들을 이 카메라로 찍어, 나름 그럴듯하게 표현했었다.
뭔가 새롭고, 솔찬히 효과를 보고, 게다가 저렴한 기술이 나오면 너도 나도 달려들기 마련이다. 그 후 내가 참여한 <로망스>라는 영화 감독도 주인공 조재현의 불안, 고통을 이 기법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그러나... 최종 편집본에 이 기법으로 찍은 컷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기억에 없다. 현장 편집이라고 그래도 나름 꼼꼼히 편집을 살펴보는 나도 기억 못할 정도니 썼다고 해도 그리 많은 분량은 아니었을 듯 싶다. 흔하고 당연한 일이다. 내용과 부합되지 않는 형식과 스타일은 결국 각질처럼 떨어져나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가면은 나름 성공한 영화다. 주로 김강우의 기억, 전해들은 과거사, 고독과 고뇌에 찬 오토바이 질주 장면에서 사용되는데, 명멸하는 영상은 주인공 뇌 속 시냅스의 어지러운 접속-단락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종종 적용 대상을 주변 인물들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행동, 가령 김민선이 멍하니 기다리고 있는 장면 등에 사용한 것을 보면 이 스타일의 적용 기준은 뭘까 의아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영화 안에 살아남았다는 건 아주 어색하지는 않았다는 얘기가 되겠다.
그러나 거기까지. 이 영화의 서사와 캐릭터는 나름 유효적절한 스타일도 과잉, 혹은 '개발의 편자'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유는 뭘까? 이 영화는 플롯상으로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그리고 소재면에서 볼 때 퀴어영화라고 할 수 있다. 미스터리 영화가 관객을 붙들어놓는 중요한 원리는 호기심이다. 결국 관객들이 알게될 정보들을 찔끔찔끔 내놓는 이른바 '정보의 지연'을 통해서 관객의 호기심을 유지하고, 그 동안 관객들은 범인은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를 추리하면서 감독이 자신의 추리를 전복시켜주기를 기대하는 장르다. 따라서 미스터리 장르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은 관객들이 잘못된 답을 추측하게 하는, 잘못된 추리를 확신하게 하는 것이다.
이건 상당히 어려운 일인 건 사실이다. 너무 정보를 제공하지 않다가 (탐정이나 형사만이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다가) 주인공이 사건 해결하는 데에 그 정보를 사용하게 되면 관객들은(독자들은) 야바위에 속은 배신감이 든다. 반면 너무 많은 정보를 내놓게 된다면 그야말로 빤한 영화, 관객들 대부분이 '영화 시작 후 20분부터 그놈이 범인인줄 알았다'는 얘길하게되는 영화가 되고 만다.
그런면에서 이 영화는 불성실한 영화다. 피해자의 과거 공통점이 드러나는 중후반까지 관객들이 고를 수 있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리스트가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물론 살인 사건과는 별개로 주인공과 그의 기억 속의 친구, 주인공의 연인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기는 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연인인 김수경이 느와르 장르의 팜므파탈에 대입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형사물(미스터리)에서 분화된 느와르에서 팜므파탈의 역할은 바로 이 두가지 영역 - 형사 주인공의 공무의 영역과 사생활의 영역이 별개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관습은 너무나 쉽게 범인을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종종 연인이 피해자로 둔갑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나마 너무나 진부한 설정이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진부한 설정'마저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영화 초반에 진짜 진범에 대한 힌트가 나오기도 한다. 여가수의 팬, 그리고 김수경의 언니 김성경의 등장이 그렇다. 그러나 이들이 이 영화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앞서 얘기한대로 관객들의 잘못된 추리를 확신하게 하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오로지 모든 중요한 단서들은 뒤로만 미루고 만다.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섣부른 미스터리 구조에서 작가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관객들에게 서프라이즈를 하려는 욕망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충족이 되어야 하는 것은 여전히 감정, 감동이다. 서프라이즈도 그 서프라이즈의 여파가 어떤 감동을 낳을 때 관객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제시하는 모든 서프라이즈는 전혀 감정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게 스타일을 무색케한다. (아, 컴퓨터를 안들고 와서 쉬는 김에 리뷰나 적자고 노트에 적는 건데...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