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크라임 (2012)
Timecrimes
7.1
- 감독
- 나초 비가론도
- 출연
- 카라 에레할데, 바바라 고에나가, 칸델라 페르난데즈, 나초 비가론도, 후안 인시아트
- 정보
- 액션, 스릴러, SF, 어드벤처 | 스페인 | 92 분 | 2012-02-02
글쓴이 평점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여행을 간다고 상상했을 때 누구나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갈등 요소는 단연 '인과율'이다.
결과인 현재가 원인인 과거를 헤집어 놓으면서 변화를 주면 그 여파는 현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모든 시간 여행 플롯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물음이다. 이러한 물음을 비껴가려고 했는지 소설 <타임 머신>은 과거로 가지 않고 미래로, 그것도 수만 년이나 떨어진, 그래서 인과율은 별로 괴념치 않는 서사를 만들어냈지만 그 뒤의 후배들의 호기심은 주야장창 인과율에 천착했다. 지금까지 나온 시간 여행 서사들을 거칠게 분류하자면 대략 세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첫째는 과거로 돌아가서 뭔짓을 하든 그 여파는 미래에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설정이다. <백 투 더 퓨처> 가 그런 류일텐데 여기서 보면 아들이 과거로 돌아가 부모의 연애를 방해할 때마다 아들의 존재가 지워지는 위기를 맞게 된다. 아래 한글의 찾아서 바꾸기 기능 (Ctrl+F+A)처럼 과거에서 수정된 사건의 여파는 한 치도 어김없이 미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시간 여행'은 아니지만 <나비 효과>에서도 보면 과거를 수정할 때마다 기억 조차 새로 직조되는 바람에 주인공은 번번히 코피를 쏟는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과거는 바꿀 수 없다는 자연 법칙을 깨뜨리는 쾌감을 관객들에게 제공하면서 판타지를 형성한다.
두번째 유형은 인과율을 어길 수 없다는 설정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미래의 존재가 과거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것은 이야기보다는 과학계에서 강조하는 얘기인데, 시간 여행이 불가함을 주장할 때 이 인과율에 위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곤 한다. 인과율 위배를 고수하는 사람 중에는 스티븐 호킹 박사도 있다. 그 역시 인과율 위배 때문에 시간 여행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운명을 바꿔보고자 하는 몸부림과 그 한계 사이에서 시지푸스처럼 고뇌하는 인간들을 그린 작품들도 여럿 있다. 이런 서사에서는 주인공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 운명이라는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노력을 본전치기 하고 만다.
세번째 유형은 인과율 위배를 교묘하게 벗어나는 설정인데 평행우주 이론이다. 즉 지금 내가 과거로 간다면 그리고 거기서 어떤 행동을 해서 변화를 준다면 그렇게 바뀌는 우주는 나의 과거가 아니라 다른 과거라는 거다. 그래서 우리가 과거로 시간여행을 거듭해서 어떤 변화를 줄 때마다 우주는 가지치기를 반복하고 결국 내가 떠난 미래(혹은 현재)로는 다시 귀환할 수 없다는 얘기다.
<타임 크라임>은 이 중에 어떤 유형일까? 다시 생각해보니 이 영화는 참 독특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두 번씩이나 과거로 돌아가서 과거에 개입하려고 하지만 새로운 버전의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드러난 현상'에 미래를 편집하려고 한다.
영화는 한 중산층 가정의 일상으로 시작한다. 아마도 남편이 퇴직을 하고 한갓진 외지로 이사를 온 모양인지 새로 집기를 들여놓는다, 정원을 손질한다, 가구를 들여놓는다 정신 없다. 그런 와중에 남편은 우연히 숲 속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장소를 찾아갔을 때 남자는 괴한의 공격을 받게 되고 피하다가 우연히 어떤 연구소로 찾아들어가게 된다.
얼굴을 온통 분홍색 붕대로 감싼 괴한은 연구소까지 쫓아오고 남자는 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어떤 기기 속으로 몸을 숨기는데... 예측대로 그 기계는 타임 머신이고 남자는 몇 시간 전의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여기서부터 시간 여행 특유의 서사가 전개된다. 다시 돌아온 과거에는 당연히 그 시간대에 살고 있던 또 다른 자기 자신과 아내가 있을 수 밖에. 남자는 고민 끝에 한 가지 처방을 내리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이 겪은 현상을 그대로 저 대상에게 재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현재의 우주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을 시간 여행을 시키게 된다면 이 우주에는 자기 자신만 남게 될 거라는 계산이다.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관객은 이전에 남자가 시간여행에 들어가기 전에 겪었던 일들이 어떻게, 누가 연출한 것인지 비로서 알게된다. 바로 미래에서 돌아온 자기 자신이었던 것. 자기 자신을 공격하고 그를 위협하고 쫓아 타임 머신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은 성공하지만, 남자는 실수로 자기 아내를 죽게 만든다. (적어도 자기 아내가 죽었다고 생각을 한다.)
이후로 극의 하이라이트는 이 과거 - 자신의 아내가 죽은 과거를 어떻게 고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리고 남자가 택하는 선택은 당연히 과거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치도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결국 그는 한 가지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운명의 현상을 충족시키면서 그 내용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이건 스포일러라 생략.
인과율에 대한 새로운 접근, 새로운 플롯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새롭고, 또 두번의 시간여행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나름 긴장감 있게 진행되는 바람에, 뻔한 이야기임에도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트라이앵글>과 같이 영겁회기 하는 운명의 굴레 속에서 존재의 바닥까지 드러내는 인간의 심연을 엿보는 플롯을 경험한 관객에게는 이런 소시민의 자기 나와바리 지키기는 그저 해프닝처럼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극의 가장 중요한 설정인 시간여행 장치에 대한 것들이 마치 부조리 연극의 배경처럼 툭하고 던져진 것은 관객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상당히 엇갈릴 수 있는 설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단 네 명의 인물들을 가지고 이런 플롯을 만들어 낸다는 것 역시 만만한 일은 아닐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