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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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얘기가 있다. 모든 동물들은 각각 저마다의 호흡의 수가 정해져 있어서, 거북이처럼 느리게 숨을 쉬는 동물은 오래살고, 쥐처럼 가쁜 숨을 쉬는 동물은 쉬이 죽는다고.
미스테리 구조의 시나리오에서 극중 인물과 관객들이 쫓는 거대한 비밀의 세력들에게 그들에게 맞는 보폭과 호흡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프로프의 플롯의 구조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조력자야 말로 주인공에게 위해를 끼치는 인물이 아닌가 싶었다. 마찬가지로 진실에 접근하는 주인공에게 진실의 덮개를 하나 둘 벗어던지는 것은 비밀의 장막에 가려진 악역들 스스로가 아닌가 싶다.
발암교 폭파 사건 그리고 이것이 조작임을 알려주는 정보제공자의 등장. 이후 이 실체를 까발리려는 이방우 기자 일행과 이를 막으려는 세력들 간의 충돌에서
이방우 기자 일행이 밝혀내는 것보다는 이를 막으려는 세력들의 과잉 행동 때문에 드러나는 진실이 더 큰 것이 아니었나 싶다.
하긴 이게 사람 사는 세상에서 비일비재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얼마 전 이사갈 집을 구경갔을 때 세입자 할머니가 튼튼한 자물쇠를 자랑하는 모습에, 우리 어머니는 그 집에 도둑이 들었나보다 생각했다니까. 굳이 라캉까지 가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그 자체보다도 그 이면에 담긴 메시지가 진실을 담보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요즈음의 사람들은 이런 정보 분석에 더 발달한 것 같기도 하다. 트위터를 보노라면 김재철 판사의 소환 시기를 놓고 FTA 발효와 맞물려 물타기를 하려는 것이라는 둥, 연예인의 가십 기사가 나오면 안기부의 작품이라는 얘기가 공식처럼 나온다.
그러나, 모비딕의 악역들의 경거망동 혹은 과잉 행동이 '정부 위의 정부'의 아우라를 풍기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우리가 사는 현실이 영화처럼 소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고 자만하는 인간들의 행태가 그렇게 조악한 때문이 아닌가 한다. 영화는 현실의 그 '조악한 대응'만큼 보여주고 또 현실처럼 그럼에도 완전히 폭로되지 못하는 한계상황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관객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현실에서 드러나는, 초등학생도 유추할 수 있는 조악한 인과관계가 아니라 그럼에도 어떻게 이 세력들은 자신의 힘을 유지할 수 있는지. 그 뿌리는 얼마나 깊이 내려가 있는지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
다시 문제는 미스테리의 배후에 감춰진 악역들에게 적당한 보폭과 호흡은 무엇인가이다. 이들이 스트립걸이 아닌 바에야 스스로 벗어던질 필요는 없지 않나?
영화에서 이방우 기자 일행이 밝혀낸 것이 무엇이었나 꼽아 본다. 우선은 차 번호가 적힌 주유소 휴지 조각에서 시작해서 이들의 근거지를 찾아내는 것. 그러나 이것은 윤혁이 가르쳐줬다면 쉽게 해결될 수 있었던 내용이다. 그나마 그 장소에서 이들이 해결한 것은 녹음기를 통해서 기밀이 담긴 디스크의 비번 네 자리 중에서 가운데 두 자리가 같은 키라는 사실 정도.
이것을 통해서 극 후반의 중요한 사건인 비행기 폭파를 저지하는 시퀀스로 넘어가지만, 그저 얼마간의 긴장감을 주면서 이야기를 꾸역꾸역 전개해나가는 장치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그 외에는 악의 중심이 장선생이 스스로 이방우 기자에게 나타나거나, 이방우 기자의 동선과는 별개의 장면으로 관객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이런 장면이 이 영화의 플롯팅에 큰 약점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유는 미스테리 구조에서 주인공과 같은 정보량을 가지고 플롯을 따라가던 관객이 이런 장면들 때문에 스릴러의 구조로 들어가서 , 이제는 비밀을 캐려는 목적을 주인공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모에 어떻게 주인공이 빠져들이 않을지를 염려하는 처지로 바뀐다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에는 이들이 만든 덫이 이렇다할 만한 무게감으로 나오지 않아 그런 긴장감도 생기지 않지만) 이런 구조 때문에 관객은 영화에 대해 어떤 호기심을 가지고 봐야하는지 헷갈리게 된다. 다행히 극을 이어가는 연출력이 뛰어나 관객이 이런 의문을 수정하고 반문할 틈도 없이 지나가긴 하지만 영화는 시간이 갈수록 관객이 가질 적당한 질문거리를 하나 둘 스스로 제거하면서 플롯을 진행한다.
마지막 장면은 이 모든 플롯의 느슨함에 알리바이를 주려는 듯하다. 오독일지는 모르겠으나 흡사 장선생처럼 보이는 인물이 이방우 기자에게 암수표를 건네는 장면은 그야말로 이 영화의 구조를 함축하고 있다. 이방우 기자는 사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고, 오직 악역 스스로의 성찰 때문이라는 것.
미스테리는 그래서 어렵다. 최근에 본 '밀레니엄'의 경우에는 아주 흔한 소재지만 그 비밀을 파헤쳐가는 주인공의 궤적에 관객이 흔쾌히 동참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면서 밀레니엄은 새로운 시리즈도 가능할 만큼의 캐릭터를 구축해 낸다. 진실이 드러나는 득오의 순간은 그야말로 찰나이고 보면 그 기나긴 러닝타임은 사실 캐릭터로 채워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인 듯. 모비딕의 경우에도 나름 충실하게 캐릭터들을 구축하려고 한 흔적들이 보이지만 그 캐릭터들의 근성에서 더 나아가 그들의 실력 - 관객과 공유할 수 있는 실력이 있었다면 더 흡입력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