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줄리아의 눈

자카르타 2012. 3. 30. 22:53



줄리아의 눈 (2011)

Julia's Eyes 
8.5
감독
기옘 모랄레스
출연
벨렌 루에다, 루이스 호마르, 파블로 데르키, 프란세스크 오렐라, 요안 달마우
정보
스릴러 | 스페인 | 117 분 | 201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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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영화 한편. 스릴러 영화 한편. 둘을 봉합하는 극세사 연출력. 


줄리아의 쌍둥이 언니가 자살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언니의 죽음이 타살이라 믿는 줄리아의 수사 이야기가 극의 앞부분을 차지한다면, 뒷부분은 언니와 같은 병으로 시력을 잃은 - 언니와 남편의 죽음에 따른 스트레스로 더 급격히 시력을 잃은 줄리아가 무방비 한 상태에서 (언니를 살해한) 동일범에 노출되는 얘기다. 남편의 자살로 전반의 미스테리와 후반의 스릴러가 나뉘면서 같은 유형의 살인 사건이 반복되는 구조다. 


전반 미스터리 서사에서는 (맥기 식으로 구분하자면) 살인자를 관객도 수사관도 모르는 '닫힌 구조'로 진행된다. 미스터리의 공식처럼 관객이 의심할 수 있는 인물로 형사와 남편을 제시하면서 남편과 언니의 불륜을 의심케하고 이를 배반했다가 다시 이를 확인하면서 미스터리 서사를 마무리한다. 미스터리 구조에서도 썩 괜찮았지만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뒷부분의 연출이다. 이어지는 스릴러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시점 샷(?)이 두드러진다. 불완전한 시력을 가진 인물의 시점 샷은 블링크, 더 아이 등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단순한 소재를 넘어서 중요한 설정의 역할을 한다. 주인공의 불리한 약점이 되어 긴장을 고조시키는 핵심 장치가 되면서 동시에 살인 사건의 원인이나 모티브가 된다. (그러고 보니 블링크나 더 아이에서는 '이식'이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연출면에서도 이런 장치들은 관객들에게 불완전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을 하는데 이를 통해서 관객들의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서사를 전개할 수 있게 한다.  '줄리아의 눈'에서는 이런 기능을 보란듯이 활용한다. 때로는 이질감이 들 정도인데. 줄리아가 전혀 앞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가 경험하는 정보와 관객이 경험하는 정보를 같은 수위로 유지하기 위해서 카메라 앵글을 집요하게 범인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구성한다. 


이런 식의 작위가 어떻게 평가되고 수용될지는 궁금한데, 나로서는 꽤 성공했다고 본다. 그런 앵글이 단순히 범인을 감추는 기능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줄리아가 수술하기 직전에 병원에서 만나는 아이작이란 조무사는 등장하는 순간부터 관객들 블랙 리스트에 올라간 상황이라 애써 범인을 감출 필요는 없었다. 작위의 앵글이 얻은 성취는 그보다는 관객이 관습상 갖는 무리한 상상력 - 죽은 남편이지 않을까, 라는 상상력을 유도하고 그러한 상상의 과정들이 주인공의 불안심리와 겹치면서 공명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에 있다. 상상을 해 본다. 만약 후반부 조무사인 범인이 줄리아를 간병하는 시퀀스들에서 조무사의 얼굴을 처음부터 드러내고 연출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 이후 똑같은 서사가 진행된다고 했을때 관객들은 조금 초점이 좁혀진 질문을 던질 것이다. 조무사가 범인일까? '좁혀진 질문'이라고 하는 것은 조무사의 얼굴을 철저히 가리는 앵글을 통해서 조무사라는 물음표에 대응할 수 있는 선택지들에 대한 질문으로 더 넓어졌기 때문이다. 즉, 죽은 남편이 조무사로 살아 돌아온 것일까? 


전반의 미스터리 구조에서 핸젤과 그레텔의 빵조각처럼 야금야금 진실에 다가가는 구조와는 달리, 마치 하구언을 빠져나가는 물처럼 질문의 범위가 산개함에도 그다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 이 지점이 연출력이 뛰어나다고 보는 지점인데 - 그렇게 해서 영화의 주제를 희생과 사랑으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로버트 맥기는 미스터리 구조에서 '곁길로 새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줄리아의 눈'은 관객이 수용할 수 있는 곁길의 선택지를 감독 마음껏 실험하는 영화였다. 그것을 카메라 앵글이라는 지극히 말단의 표현 기법으로 연출한 것이 우직하면서도 영리하게 느껴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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