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어웨이크닝
The Awakening
6.3
글쓴이 평점
안개가 낮게 깔린 숲을 배회하는 여자의 모습. 광각렌즈로 본 듯 포스터 안의 나무들은 중앙의 여자를 중심으로 휘어져 있다. 그리고 여자는 포스터를 보는 나의 시선을 그대로 맞받아치고 있다. 그 시선 앞에서 나는 움츠러든다. 좀 더 넓은 시야를 평면에 우겨넣는 광각렌즈의 욕심은 그녀의 여민 가슴 속을 헤쳐보지 못하고 좌절하고 만다. 엿보는 자의 음습함 못지않게 여자가 감춘 비밀 또한 헤아릴 수 없다.
포스터 속의 풍경과 서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영화다. 20세기 초 아직 사람들이 떨쳐버리지 못한 미신과 세계대전에서 확인한 광기를 과학과 논리의 이름으로 도장격파해 나가는 여자 작가가 주인공이다. 그에게 어느 날 시골 학원에서 벌어진 유령 출몰 사건을 수사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광신조차 믿음의 일종이라 그것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포악과 절망에 지친 그는 거절을 하려고 하지만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그 문제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후 익숙한 탐정 서사처럼 일련의 과학 장치로 유령 출현과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시퀀스와 이후 합리의 영역을 넘어서는 초자연 현상의 출현과 그로인한 주인공 작가 자신의 트라우마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초반 속도감 있는 전개는 후반에 개인의 트라우마로 넘어가는 순간 급격하게 힘을 잃는다. 그리고 관객들과 약속한 설정을 야금야금 위반하면서 이야기의 결말에 흔쾌히 동의, 공감하지 못하게 한다.
언제부턴가 이야기에서 '실은 모든 게 꿈이었어' 식의 결말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이 영화가 주인공 작가의 꿈이라는 게 아니라, 관객과 작가가 공유한 '설정'을 파괴한다는 의미에서 이 영화도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양한 사례를 보면 선명하게 규정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식스센스처럼 훌륭하게 관객과 공유한 설정을 전복시키는 것도 있는가하면, 설마 이건 아니겠지 싶은 선까지 넘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것이 '반전'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존재가치를 주장하려는 것 같지만 그 반전이 그저 '사실 관계'가 틀렸음을 의미하고 마는 것이라면 그 '사실 관계'를 설정하는 전권을 가진 작가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일 수 밖에 없다.
관객은 융통성 없게 이야기의 전형을 유지하라는 것이 아니라 반전을 통해서 형성하는 가치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구성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모든 사건의 실체를 알게되는 그 정보가 결국 어떤 의미를 형성하는가? 내 생각에는 전혀 없다고 본다. 그것은 그저 감독의 일방적인 설정일 뿐이지. 차라리 초반의 선생들과 아이들의 위선, 폭력성에 더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죽은 귀신도 산 사람도 전혀 감동 없는 행위들만 나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