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이드 (2012)
The Divide
4.8
- 감독
- 자비에르 젠스
- 출연
- 로렌 저먼, 마이클 빈, 로잔나 아퀘트, 마일로 벤티미글리아, 마이클 에크런드
- 정보
- 공포, 스릴러 | 독일, 미국, 캐나다 | 110 분 | 2012-04-00
글쓴이 평점
파리대왕 미래 버전
복거일이 얼마 전 '진화심리학' 운운하면서 성본능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숫컷들 중에 강단에 설 기회를 종종 얻는 종자들이 그 기회를 덜떨어진 자신의 유머 감각이나 미숙한 철학에 대한 사회의 수용력을 시험하는 장으로 삼는 일이 어제 오늘은 아니지만, 빗발치는 비난 속에서도 자신은 그저 '진화론'을 얘기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는 데에 이르면 알량한 필명이나 지위로 타분야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봉합하는 그들의 행태가 괴씸하기도 하고 가소로움에 헛웃음이 나온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책에서 종을 퍼뜨리는 유전자의 욕망을 개채의 욕망으로 혼돈하는 오류를 경계한다. <타임>지가 던진 '간통은 우리 유전자 속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그는 '참으로 무의미한 질문'으로 치부한다. 간통이든 순결이든 우리 유전자에는 없으며 그것은 유전자를 뛰어넘어 개체가 주변과 맺는 환경과 문화, 개인의 의지의 복잡한 변수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닭장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서로의 머리를 쪼아 죽이는 닭들처럼 고립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타락을 그린 이야기들도 자칫하면 이런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성악설이 불쾌하거나 근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중력에 이끌려 추락하는 물체를 보여주는 것이 무의미한 것만큼 그냥 타락하는 인간을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디바이드라는 영화도 그런 류의 영화다. 핵공격에 의해 지하로 대피한 여덟 명의 사람들이 '파악할 수 없는 밖의 상황이 주는 공포', '바닥나는 식량', '낯선 이웃들에 대한 불신', '치졸한 권력 관계', '약자에 대한 억압' 등을 엮어가면서 줄기차게 상잔의 길로 간다.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맺는 관계가 가파르게 변화하는 모습은 꽤 설득력 있게 그려냈지만 그래서 뭐? 하는 물음이 고개를 쳐들게 하는 영화다. 모든 영화가 인간에 대한 낙관을 펼쳐야 할 이유도 없고, 그게 진실되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들의 자포자기는 너무 쉬운 선택처럼 보인다. 특히나 그런 자포자기의 알리바이로 대는 에피소드들이 개연성이 없이 서사에 불쑥 들어오는 상황이고 보면 관객은 그저 소 닭보듯 영화를 볼 수 밖에. (핵전쟁 사이에 갇힌 사람들 중 일부를 데려다 바로 그 앞에서 생체실험을 하는 것, 마이클 빈이 연기한 미키의 트라우마 과잉과 비밀의 창고 등의 설정은 그저 금방 밑천이 드러나는 겉멋처럼만 보인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나? 아니 이유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