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이름 정여립(조선사회사총서 6)
아, 이제 검색해보니 이 저자가 이 책의 내용을 고증을 추가해서 새 책을 내놨네. 조만간 그 책도 봐야겠다.
아주 아주 오래 전에 사 놓고 앞부분 찔끔 읽고는 처박아 뒀던 책이다.
기축옥사, 1589년에 있었던 정여립 역모사건과 그 후처리 과정에서 벌어진 잔혹한 옥사에 대한 여러 문헌과 증언들을 종합한 책이다.
옥사가 벌어진지 벌써 420여 년이 흘렀지만 그럼에도 지금도 이 옥사에 대한 그리고 정여립에 대한 혹은 당쟁에 대한 연구서들을 보면 영남과 호남이 또 엇갈린 평을 내놓고 있다. 가장 분명하게는 동인과 서인에 대한 평가들이다. 당시 동인에는 영남만이 아니라 호남 세력들이 대거 진출해 있었고, 서인세력은 기호지방을 중심으로 선배층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던 데도 기축옥사가 호남인들에 대한 전방위 탄압의 시초가 되어서 그런지 지역색에 따라 엇갈리는 듯한 인상이다. (물론 나도 당쟁에 대한 책을 몇 권 보지 못한 터라 더 자세히 검증을 해봐야겠지만.)
아무튼 그런 중에 이 책은 저자가 기축옥사를 조선판 광주사태라고 규정하는 것에서 보이듯이 정여립에 대해 옹호하는 시각에서 쓴 책이다.
그러나 저자도 밝히듯이 기축옥사 이후 서인의 집권, 그리고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기록들이 소실되면서 정여립과 기축옥사에 대한 정확한 자료들이 대거 손실되었고, 이때문에 당시의 정황을 정확히 밝히기가 어렵다고 한다.
정여립에 대한 입장과 평가는 대략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정말로 정여립이 모반을 꾀했다는 것과 서인의 모함이라는 것.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여전히 피상에만 머물러 있다. 정여립이 모반을 꾀했다면 그는 전제군주 시대에 어떤 시대상과 이념을 가지고 나왔던 것인지가 밝혀져야 하겠고, 서인의 모함이라면 정여립을 중심으로 서인들의 반대당 탄압과 박해가 어떻게 주도면밀하게 구조를 갖고 진행되었는지가 증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여립에 대한 논의는 여기까지 진행되고 있지 않은 듯 싶다.
이 책의 저자도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서 정여립이 군주제에 반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이 기축옥사의 발단이 되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 후 천여 명에 달하는 연루인사들의 옥사는 서인의 정략에 따라 진행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현재 시점에서 정여립의 기축옥사를 되새기는 의미는 정여립의 시대정신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었는가를 재조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쉬운 것은 - 새로 고증된 책에 그런 내용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그 시대정신이 정확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몇가지 그의 학파를 추정하고 그가 시경에 능통했다는 이유로, 시경의 어떤 구절을 주장했으리라는 식으로 논지를 펴고, 또 군주제를 부정하는 것이 원시 공화주의자라고 평가하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에는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는다.
대동계라는 것도 정여립 이전에 이미 틀이 갖추어진 것이고 보면 그가 대동세상, 즉 묵가가 얘기한 평등세상을 주창했으며 그 사상이 훗날 동학에 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다고 단언하기는 부족할 듯 싶다.
정여립과 기축옥사에 대한 실체를 얻고 싶어 본 책이었지만 저자의 한계가 아니라 고증의 한계 때문에 여전히 안갯속임을 확인한다.
다만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몇 마디 글과 말로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세상이란, 그 세상에서 사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야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출판사인 가람기획은 망한걸까? 역사서에 집중하는 모습이 좋았는데, 이런 중소 출판사도 대박이 났으면 좋겠다. 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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