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 걸즈 (2006)
Swing Girls
9.1
글쓴이 평점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영화들이 있다. 줄거리를 추려내느라 장식을 거둬내고 보면 결국 본질을 잃고마는 영화들, <스윙걸즈>가 그런 영화다.
고등학생 아이들이 재즈밴드를 만든다는 설정은 그저 트리의 나무와 같다. 야구치 감독의 전작인 <워터 보이즈>에서 싱크로나이즈라는 소재가 성역할을 뒤집는 데서 오는 아슬아슬함과 쾌감을 가지고 있다면, <스윙걸즈>의 '재즈'라는 소재에서는 그 이질성이 좀 더 다양한 코드로 복잡해 졌달 뿐, 크리스마스 트리의 나무처럼 자잘하고 섬세한 장식들을 위한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워터 보이즈>가 그랬듯이 여기에는 어떤 성취를 이루기 위한 불굴의 의지, 피나는 훈련, 역경을 딛고 일어선 희망 같은 건 없다.
오로지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 뿐이다. 이 영화를 보고 즐거운 것은 마치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즐거운 것과 마찬가지다. 전체에서 보이는 미도 즐겁지만 하나하나 반짝거리는 그 명멸하는 빛들이 이 영화에 생기를 주고 보는 내내 웃음 짓게 한다.
도시락 배달 과정의 에피소드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과정들, 특히 멧돼지를 만나는 장면과 이들이 악기와 재즈와 사랑을 하게 되는 순간들은 연출의 고유한 스타일에 힘입어 마치 오래된 사진첩처럼 그 하나하나에 독립된 시선과 감정을 간직하게 만든다. 그건 마치 이 아이들이 연주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게됐을 때, 저희들끼리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도 같다. 그저 매순간이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들이다.
상당히 빡빡한 스토리와 복잡한 인과관계, 기묘한 복선에 익숙해져 있어서 나 스스로도 평점을 낮게 먹였지만, 그러고 보면 우리한테는 혹은 요즘 청소년들 한테는 이런 영화, 이런 가치관이 필요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 안달복달 하지마 그저 그 순간의 명멸하는 빛을 놓치지 말자. 그렇게 위안하는 감독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재밌게 즐기시기를.
시퀀스 분석
#1.
여름방학 수학 보충수업을 이수해야만하는 낙제생 주리는 수업을 땡땡이 치기 위해 밴드부의 도시락 배달을 자처한다.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 배달에 나서지만 내릴 역을 지나는 등 결국 도시락을 상하게 만들고 밴드부는 식중독을 일으킨다.
#2.
도시락이 모자라 식중독을 모면한 유타는 일주일 뒤로 다가온 야구 시합에 나설 배드부를 급조하게 되고,
여기에 수학반 학생들을 대거 참여하라고 권한다. 주리와 수학반 학생들은 보충수업을 땡땡이 칠 수 있다는 생각에 밴드부에 들어오기로 한다.
#3.
본래 마음이 딴 곳에 가 있던 터라 아이들의 연습은 엉망이다. 피리를 들고 나타났던 유리카만이 트럼본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경쟁심리에 휩쓸려 아이들은 드디어 제각각 악기 소리를 내게 되고 점차 악기에 대한 매력에 빠진다.
그리고 엉성하지만 첫 연주를 하게 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식중독에 걸렸던 밴드부가 돌아오고 이들은 악기를 내주게 된다.
#4.
악기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악기를 구입하기로 하고 마트 알바를 시작한다. 그러나 사고로 돈도 못받고 쫓겨나고 다른 아이들도 뿔뿔히 흩어진다. 남은 것은 다섯명뿐. 이들은 유리카의 권유로 송이버섯을 따러 갔다가 맷돼지를 만나 위기를 맞지만 드럼 주자가 맷돼지를 깔고 앉는 바람에 목숨을 구하고 포상금을 받기까지 한다.
#5.
중고 악기를 구입한 이들은 기타 연주자의 소개로 악기를 수리하고 연습장소를 전전하다가 수학선생을 만나게 된다.
알고 보니 수학선생은 재즈 마니아였던 것. 수학선생은 밴드부 지도를 맡게 되지만 사실 어떤 연주도 할 수 없는 생초보다.
#6.
선생이 재즈 학원에서 배운 그대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아이들은 스스로 재즈의 묘미를 터득한다.
그 연주에 떠난 친구들이 감동하고 다시 합류해 드디어 어엿한 밴드를 구성하게 된다.
#7.
이들은 지역 음악제에 참가하기 위해 신청자료를 만들고 이를 보내기로 한다. 그러나 주리의 실수로 탈락하게 되지만 주리는 이를 말하지 못하고 결국 이들은 무작정 현장으로 출발하게 된다. 기차로 가는 도중 주리는 사실을 털어놓고 아이들은 모두 실망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즐기던 것은 음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함께 연주하던 순간 다시 참가의 기회를 얻게 된다.
#8.
마지막 음악회. 멋드러진 연주. 조명 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