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지식의 대통합)
아마 2008년이지 않았을까? 연구소 다니면서 샀던 책을 이제야 읽게 됐다. 밀린 채무를 갚는 느낌으로 시작한 독서는 역시나 그리 만족스럽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실망 쪽에 가까웠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통섭'은 종종 듣게 되는 단어였다. 요즘처럼 창의력, 창조경제가 부쩍 주목을 받는 때에는 더욱 그 실천 원리로 통섭이 거론되곤 한다. 우리 연구소에서도 이 '통섭'의 원리를 우리 연구소가 지향할 가치로 설정하고 최재천 교수를 초빙해서 강연도 듣고 대담자리도 마련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떠도는 '통섭'의 대략의 이미지는 분과학문 사이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또 이들과 인문학이나 예술과의 활발한 교류 정도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 <통섭>을 읽다 보면 그게 얼마나 윌슨이 주장하는 '통섭'과 동떨어진 이야기인지를 알게 된다.
윌슨이 주장하는 '통섭'은 분야간 대등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교류하고 양쪽의 성과들을 도입하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윌슨은 인문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예술이든 인간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하며 그를 위해서는 생물학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이렇게 과감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의 근거는 최근까지 비약의 발전을 거듭한 인지과학, 진화생물학 등의 성과 때문이다. 인간 행동을 유전자 차원에서 풀어내기 시작한 이 분야의 성과들은 머지않아 인간을 온전히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선택과 축적을 거듭해 온 유전자와 또 환경이 인간에게 가하는 모든 감각들을 선별, 해석하여 인간의 진화를 돕는 후성규칙, 이 두가지가 인간의 모든 문화의 원인이 된다는 윌슨의 주장을 반박하기란 상당히 어려울 듯 하다. 그러나 이 책이 주장하는 것처럼 '통섭'을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행동 강령으로 삼기에는 얼마든지 합리적인 반박이 있을 수 있다.
우선은 그가 말하는 가까운 미래, 인간의 모든 행동의 인과관계를 충분히 밝혀내어 다른 학문들의 기반으로 삼을 날이 올 것인지가 의문이지만 여기에 대한 윌슨의 신념은 확고하다. 거의 '천국이 가까이 왔다.' 수준의 믿음을 보인다. 그것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그렇다고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생물학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사실 그럴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윌슨의 주장대로 생물학이 충분히 성숙한다면 그래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결과들이 나온다면 그 때 그 결과들을 활용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책에 그 내용이 있는데도 내가 잘 잡아내지 못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생물학을 중심으로 한 '통섭'의 시대가 온다는 것과 '통섭'을 지금 여기에서 실천하라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이 책에서 다양한 분야와 생물학의 접점을 소개하는 사례에서도 번번히 윌슨이 인정하듯이 '그러나 아직은...'의 상태라면 윌슨의 비분강개한 '통섭'에 대한 기원은 그저 예언자의 기도만큼 아득해 보인다.
세번째 가장 중요한 의문은 과연 인간의 문화의 진화는 상황이라는 요인과 유전자라는 요인에 의해서 결과로서 이뤄지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모든 문화가 인간조건과 물적토대의 결과로서 이뤄진 것이라면, 후성규칙이 반영하여 재 창조 하는 문화도 결국 인간조건 안에서의 일이지 않을까? 이 환원과정이 어떻게 문화의 창발과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 고유의 가치를 생산하는 것과 같은 발산의 과정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다. 이 책에서도 역시나 생물학과 예술과의 관계를 제시하면서 예술의 창작의 원리가 아니라 창작된 예술을 분석하는 도구로서의 통섭을 얘기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짜증스러웠던 것은 이 '통섭'을 해야하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이 책의 마지막장은 통섭의 이유에 대해 명쾌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인간이 당면한 여러가지 문제를 제시하면서 그 문제의 근원에 인간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여러 학문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가령 환경자원의 고갈을 합산하지 못하는 경제학처럼, 인간조건, 생물환경을 종합하여 고려할 수 있는 도구로 '통섭'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통섭 만이 인류의 현재에 대한 진단과 미래에 대한 전망에 근거를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이 마지막 장으로 통섭의 필요성과 당위는 충분히 공감을 하는 바이지만 앞의 내용들이 너무나 요원하게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것들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통섭을 학문간의 분야간의 활발한 교류 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 보다는 황당하고 짜증스러운 경험이었지만 윌슨의 주장의 근거에는 상당히 공감을 한다. 책을 다 읽을 즈음 윌슨이 썼다는 소설 이야기를 들었다. 노 학자는 또 어떤 소설을 썼을지. 그의 종교와도 같은 통섭에 대한 의지와 비전이 어떻게 소설에 반영되었는지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