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경. 1
묵경. 2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묵경>을 읽었다. 중국의 과학사의 뿌리를 이룬다는 묵가. 그 묵가가 전하는 문헌 중에서 '경' '경설' '대취' '소취'를 따로 모아 묵경이라고 부른단다. 하지만 경과 경을 풀이한 경설이 전체 묵경의 90퍼센트는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원저의 분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경의 구절들이 대부분 몇 글자에 불과하고 경설도 그저 한 문장에 불과하다.
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 오히려 그 단순함 때문에 해설이 붙은 <묵경>은 500페이지 2권의 분량이 되어 버렸다. 진나라가 전국시대를 통일하면서 묵가도 명맥이 끊겼기 때문일까? 묵가와 묵경은 천년이 훨씬 넘도록 잊혀진 사상, 잊혀진 문서였다고 한다. 겨우 거의 근대에 와서야 '중국에는 왜 과학이 없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으로 뒤늦게 조명이 되기 시작했고, 그때는 이미 원서의 상당부분이 소실된 후라고 한다.
이 책 <묵경>도 원 구절에 대해서 손이양과 다른 옛 주석가들의 해석과 교정을 나란히 제시하고 그 뒤에 이 책의 저자의 해설을 첨부하고 있다. 그러나 그 풀이와 해석이라는 것도 사람에 따라 달라 일치된 견해를 갖는 것은 드물었고, 경과 경설의 구절을 해석했다 하더라도 전체 맥락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어떤 사상을 이루는지 그 전체 윤곽을 그리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상당히 인내심을 요하는 책이다.
경과 경설의 앞부분은 단어를 제시하고 이 단어들을 정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내용은 기하학, 논리학의 내용들이다. 그래서 묵가의 연구를 현대의 수학자가 참여하여 같이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확히 이해를 한 것은 아니지만 수학에서 공리에서 공준, 명제를 뽑아내듯이 한 단어를 정의하고 그 단어에서 파생되는 다른 가치들을 설명하고 있는 듯 보이는 구절들도 꽤 있다. 역대 주석가들이 해석했다는 해석은 때로는 수학과 때로는 형이상학을 왔다갔다 하고 있어 어떤 일관성을 보기는 어렵다.
중국 고대 과학을 슬쩍 엿볼 수 있을까하는 기대로 봤던 책인데 상당히 아쉬운 감이 든다. 이건 우리 고전 해설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기도 한데, 이 책 <묵경>에서 서양의 학자가 묵경을 해석한 내용이 주석으로 붙은 걸 보면 상당히 현대인의 용어로 풀어 쓰려고 노력한 것을 볼 수 있다. 언젠가 우리가 <주역>이라고 하는 것을 외국에서 <The Change>라고 이름을 붙인 것을 봤다. 우리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원저에 가깝게 체험하게 하자는 취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처럼 주석가들도 혼동하고 일치되지 않은 다양한 주장들, 그리고 원저에 대한 글자 교정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까지 병행해서 제시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이 책이 그런 수준을 요하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내가 잘 못 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읽은 책인데 별로 보람을 느끼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