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작년 연말인가 올 초인가? 시작한 벽초 홍명희 <임꺽정>을 이제야 다 읽었다. 주중에는 다른 자료들을 보느라 미처 보질 못했고, 주말과 휴일에만 읽었는데 그나마 5월과 6월은 한동안 손에 잡질 못했다.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건 우선은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의 시대배경인 임진왜란에서 불과 30년 정도 앞선 명종 시대의 얘기여서 당시의 풍습이나 문화를 엿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그 전부터 홍명희 선생에 들은 얘기도 한 몫을 했다. 그래도 워낙 읽을 거리들이 쌓여 있어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있었는데 결정을 하게 된 건 고미숙 선생이 임꺽정의 서사와 인물에 대해 쓴 글 때문이다.
고미숙 선생은 임꺽정의 인물들을 통해 현대의 몰개성하고 자본에 휩쓸려 사는 세태에 대한 비판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임꺽정 패거리 일곱 형제들이 모두 제나름의 장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면서 인생이란 끊임없이 자기의 정체성과 개성을 찾아가는 공부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처음 몇 권을 읽었을 때 아니 끝까지 읽는 동안에도 임꺽정이나 임꺽정 패거리들에게 쉽게 공감이 가질 않았다. 고미숙 선생이 말한 지점들은 모두 맞지만 그들이 대적한 세력들이 단지 탐관오리나 당시의 수탈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같은 민중에 대해서도 거의 구별없이 폭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도 고미숙 선생은 임꺽정을 '의적'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임꺽정 10권 말미에 임형택이 쓴 해설에는 굳이 임꺽정을 민중들 편에 일어난 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데 이는 상당히 의도를 갖고 어느 부분만 강조한 평이다. 가장 불편한 것은 역시 임꺽정의 폭력이다. 임꺽정에게는 정의를 실현해야겠다는 사명감도 없고, 그의 힘에 따르는 책임감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영달과 주위 사람들의 안위만을 위해서 그 힘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자신의 세 첩이 포도청에 잡히자 파옥을 모의하는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힘을 보태기 위해서 끌고온 이웃 도적들이 한양 안에서의 파옥을 두려워하고 임꺽정에게 반하자 임꺽정이 도적의 괴수 둘을 죽이고 만다.
그 밖에도 임꺽정의 힘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지 않고 있음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거의 7권이나 8권쯤, 화적패로서의 삶이 주로 소개될 때 특히 이런 모습들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오르한 파묵의 책에서 '캐릭터의 전형성을 탈피하고 주제를 드러낼 수 있는 상황들을 인물들에게 제시해주는 것이 소설가의 임무'라는 얘길 읽었다. 정확히 <임꺽정>에 들어맞는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다른 대하소설들에도 적용되는 말인 듯 싶다. 조정래나 박경리의 대하소설을 보면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운 다양한 태도와 행동들을 보이고 있다. 마치 우리 주위의 누군가처럼. 그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열심히 찾아간 것이지 어떤 '캐릭터'를 연기한 것이 아니다.
그런 시각으로 <임꺽정>을 보면 오히려 그들에게 어떤 정의의 사도의 역할을 기대한 것이 비슷한 영웅담에 익숙했기 때문인 듯 싶다.
<임꺽정>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만큼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한 인간에게서도 세월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양반 자투리로 기를 쓰고 제도권에 들어가려다가 끝내 권력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고 도적이 되는 이봉학이, 청석골의 좀도둑이자 한 가정의 자상한 가장으로 살다가 임꺽정 패거리의 한 두령이 되는 오개미치, 남의 집 종살이를 하다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여인을 잃고 여인의 아이도 황망하게 잃은 뒤에 아이 울음 소리만 나면 아이들 살생을 일삼는 곽오주 등등 어느 인물이든 나름의 사연을 굽이굽이 따라 흐르면서 그 때에 맞는 선택을 거쳐 한 사람의 인물을 만들고 있다. 거기에는 애초에 이런 인물이면 이렇게 가야하는 명제가 있다기 보다는 그저 다양한 군상들을 이루는 우리의 삶의 단면을 드러낸 것과 같다.
<임꺽정>은 아쉽게도 자모산성 하편을 시작하자마자 끝이난다. 모두 자모산성으로 대피를 하고 홀로 남은 오가가 실의에 빠져 있는 대목이다. 뒤에 자모산성에서 구월산으로 옮겼다가 서림의 밀고로 잡히는, 가장 긴박하고 처절할 장면들은 모두 싹 빠졌지만 그게 실제로 담겼다면 정말 마음이 아팠을 성 싶다. 글을 읽는 중에도 역시 도적놈일 뿐인 이들이지만 취즉도 산즉민이라 이들을 이렇게 궁지로 몰아넣은 당시 권력층의 무능이 답답하면서도 그새 정이 들었는지 이들의 안위를 걱정하게 된다. 벽초 홍명희 선생이 해방 후 다시 이 글을 잡고 마무리를 했더라면 또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6개월 간 우리 말의 숲 속에서 신나게 뛰어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