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재밌다. 홍상수 감독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너무 근방의 얘기라 그 가치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고나 할까?
친구들이랑 술자리에서 나누던 얘기들을 굳이 영화로 만들 이유가 어디 있을까?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북촌방향>에서 김보경이 그의 술집 '소설'로 걸어들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영화가 소설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굳이 단편 에세이나 단편 소설로 쓸 소재와 그것을 영화로 만드는 것의 차이는 뭘까?
소설이라면 전혀 쓰이지 않았을, 지금 현재 술자리를 벌인 좌중들의 이야기를 끊고 김보경이 술집으로 걸어들어오고 있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이유는, 그 기능은 뭘까? 관객들은 그 장면의 반복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 걸까?
분명, 김보경이 지금 서둘러 오고 있구나, 하는 정보를 제공하려는 것은 아니다. 의문의 술집 여인이 유 감독의 애인인 경진과 닮아다는 것을 즉, 김보경이 1인 2역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전에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이유? 그런 거라면 한 번으로 족하다. 그리고 홍상수가 그런 플롯을 쓰는 감독도 아니잖나? 그럼 왜 이런 컷이 들어갔을까?
'기표'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마 십수 년 전 홍상수 감독이 데뷔했을 때, 그 즈음의 평론은 기호학의 용어들을 여기저기 많이 사용했었다. 반면 요즘은 한물간 용어기는 하지만 그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기표'에 상응하는 '기의' 없이 그저 떠도는 신호들의 연속이었다. 퇴물 배우가 한 얘기를 의젓한 김상중이 버젓이 자신의 얘기처럼 되풀이한다. 송선미에게 인정받고자 했던 그 조바심은 결국 분노로 이어진다. 그리고 유준상에 대한 거부로 이어진다. 유준상은 같은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반복한다. 그 대상은 1인 2역의 김보경이라 실은 대상의 구별도 별로 의미가 없다. 경진에게서 문자가 오면 유 감독은 술집 주인 여자에게 키스를 한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냥 서울을 통과하겠다'라고 다짐하며 시작한 유 감독의 서울 유숙은 그렇게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끝이 난다. 그러나 그의 호언대로 그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다시 그 장면을 생각해 본다. 김보경의 뒷모습의 컷은 왜 그렇게 자주 반복이 되었을까? 이유보다는 어떤 느낌을 주려던 걸까? 다음에 누군가를 만나면 이 얘기를 물어봐야 겠다. 마지막 사진 찍은 팬에게 포즈를 취해주는 유준상의 표정은, 너무 연극톤이라 그리 마음에 들지 않지만 영화에 썩 어울리는 마침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