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시간 순서대로 영화를 봤다면, 감독이 하고자 하는 얘기와 그의 작품 세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반복, 변주되는 것들이 보이는데 그 지향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차산이 나와서 반가운 영화다. 내가 살던 동네. 한 때는 하루가 멀다하고 오른 산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우디 앨런의 영화처럼 공간과 밀접하다. 그 공간에 이방인의 시선을 두면서도, 일상성을 유지한다는 면에서는 우디 앨런과 다른 점이다.
이 영화는 네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 보고 난 뒤에, 네 편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역시나 그게 중요하지는 않다. 아마 정유미가 문성근과 사귀다가 이선균을 사귀고 나중에 이선균이 강사가 되었다고 짜 맞출 수도 있겠지만 홍상수 감독의 이야기의 특징은 그게 누구여도, 같은 사람이거나 다른 사람이어도 별로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궁금하다.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이 이야기들 - 영화 감독의 사랑, 가정을 둔 유부남의 불륜, 그러나 선뜻 어느 한쪽을 택하지도 못하는 남자, 그 남자를 떠나지 못하는 여자, 서로 간을 보는 사람들, 하룻 밤의 욕정 그 뒤의 잔상들, 추억에 덧입혀지는 감상들, 여기에 천착하는 - 그야말로 딱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이유는 대체 뭘까?
이 영화 첫 번째 단편에서도 이선균의 시사회때 관객이 질문을 한다. '감독님 영화는 감독님 얘기라면서요? 그걸 우리는 돈주고 보잖아요.' 마치 홍상수 감독이 직접 들었음직한 얘기를 고스란히 옮겨놓는다. 나 역시 그런 생각 때문에 어느 순간 이후 부터는 보지 않았지만, 그게 감독 자신의 이야기인 것과 그 얘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다. 그 찌질한 자화상들을 관객들에게 들이대는 이유는 뭘까? 그럼에도 시시덕거리며 보는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