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지금 VHS로 영화를 보라면 못 볼 것 같은데 그때는 그나마도 테잎이 없어서 찾아보지 못한 영화들이 많다. 영화과에 다닐 무렵 가장 좋았던 건 그런 걸작들을 자료실에서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마 이 영화도 그 즈음에 봤을 것 같다. 정확하지는 않다. 이 영화를 연출한 브라이언 드 팔마는 당시 영화과에서 수업시간에 연출을 분석하던 감독이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 대에 몇 작품을 만들었을 때는 거장의 귀환을 반기며 꼭 극장에서 보곤 했었는데 솔직히 그다지 재밌게 본 기억은 없다. 브라이언 드 팔마는 언제나 <스카페이스>나 <캐리>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오래 전에 본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건 2013년에 리메이크된 <캐리>를 보고 나서다. 기억 속의 영화와 너무 달랐다. 이렇게 재미가 없었나 싶었고, 원작과 얼마나 달라진 건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이제 다시보니 브라이언 드 팔마의 연출 방식이 상당히 진부하다는 느낌이다. 오래전의 감독이라고 해서 꼭 진부하란 법은 없다. 그럼에도 유독 팔마의 연출이 그렇게 진부하게 느껴지는 건 그 스타일 탓일 게다.
뭐랄까? 밑줄을 긋는 연출이라고나 할까? 노골적이라고나 할까?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고, 특정한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음향과 음악과 카메라 워크와 편집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이 이제와서는 상당히 촌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뒤에서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캐리를 죽이려고 캐리의 엄마가 칼을 들고 오는 장면에서 캐리의 엄마가 웃는 모습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건 아마 달리 연출한 2013년 버전을 보고 난 뒤에, 두 작품이 비교가 되서 일텐데 영화 전반에 걸쳐 엄마에 대해 별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는 광신자인가? 딸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
또 토미와 캐리가 춤을 추면서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 워크는, 당시에는 상당히 주목을 받았을 것 같지만 요즘처럼 TV에서도 별로 쓰지 않는 그 방식은 상당히 거슬렸다. 캐리를 무도회에 보내고 엄마가 혼자 당근을 써는 장면도, 세 번이나 점프 컷을 하면서 클로즈업으로 들어가는 것도 비슷한 느낌이다.
좋게 말하면 스타일리쉬한 연출이지만 그에 비해 인물의 감정은 곳곳에서 빈곳을 드러낸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엄마의 감정이 선뜻 잡히지 않고, 캐리와 엄마의 힘의 균형이 캐리에게 기울기 이전과 이후의 관계에 대한 연출도 상당히 투박하다. 초경을 맞은 십대 여자 아이, 게다가 자신이 염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겪는 심리의 변화를, 감독은 거의 무시하면서 가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들은 물론, 2013년 리메이크 버전을 보고 든 생각이다. 리메이크 버전을 보고 처음 들었던, 재미없다는 느낌은 원작을 본 뒤에는 원작보다 훨씬 섬세하게 연출을 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역시 주연 배우다. 리메이크 버전에서 캐리를 연기한 클로이는 상당히 훌륭한 배우이기는 하지만 1976년 버전의 시시 스페이시의 기괴함 혹은 신비함을 따라가지는 못하는 것 같다. 시시 스페이시가 좀 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다.
기억은 언제나 채색되기 마련인가 보다. 예전에 VHS로 봤던 영화들을 조금씩 다시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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