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작과 비교하자면 훨씬 재미있다. 우선 아버지의 설정 부터가 다르다. 원작의 경우 아버지의 배경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에 비해 한국 버전에서 아버지는 직장 생활에 치여 딸을 살피지 못하는 무능한 아버지로 나온다. 직장에서도 정당한 항의 조차도 상사에게 하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나온다. 복수심의 근저에 죄책감이 있다는 것은 타당한 통찰이다. 제때에 표출되지 못한 분노의 울화야 말로 복수를 끌고가는 동력이다. 그런 면에서 무능한 아버지에 대한 강조는 꽤 효용을 발휘한다.
원작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 중에 하나는 강릉의 한 학원에서 미성년자 매춘업을 하는 포주를 살해하는 장면이다. 원작에서는 이 에피소드 대신 산장의 어느 부녀를 만나는 얘기가 이어진다. 그들의 배경은 거의 나오지 않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으로 나온다. 아마 원작이 힘을 잃게 되는 지점도 이 지점이었던 것 같다. 고립된 주인공의 상황이 주는 긴장이 힘을 잃는 지점이었다. 한국 버전에서는 여기를 복수의 동기를 강화하는 에피소드로 채워넣었다. 딸을 죽인 강간범들의 추악한 외연을 확인하면서, 또 딸과 비슷한 또래들을 타락시키는 놈들의 만행을 확인하면서 아버지의 분노는 공분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여기서 벌이는 살인으로 인해 복수의 행동이 일종의 '궤도'에 오른 듯한 느낌을 준다. 원작에서 한 번의 살인 이후에 어정쩡하게 살의가 희석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는 달리 한국 버전에서는 여전한 살의와 그 살의를 회의케 하는 상황 사이의 긴장이 존재 한다.
남은 한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우연히, 서로의 존재를 모른채 같은 버스에 탄다. 아이는 우연히 본 남자의 상처를 염려해준다. 또래 특유의 건성건성한 태도이지만 그건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려 깊은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 익명의 만남이 남자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눈보라 속에서 딸의 환영을 만나게 된 계기에 일조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 몇 가지 장면만으로 이 영화는 훨씬 처절한 아버지의 감정을 만들어 냈다. 이 연출 솜씨에 궁금해 감독의 전작을 살펴볼 정도였다. 앞으로 기대가 되는 감독이다.
아, 아무튼 스릴러나 복수극에서 사회의 맥락에 인물들을 배치하는 것은 우리 영화의 독특한 현상이다. 그리고 적절한 방식이자, 정치면에서 볼 때도 올바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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