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통쾌한 영화를 봤다. 이 영화 때문에 연이어 복수에 대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 지금은 이 영화 뒤로 몇 개의 복수 영화를 보고 묵은 리뷰를 쓰는 중이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이라는 책에선 복수의 플롯을 위해서는 주인공이 악역의 악행을 직접 목격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서사라는 것이 진화를 하는 터라, 요즘 복수의 영화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방황하는 칼날>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딸의 죽음을 목격하지는 못하지만 그의 복수 행각에 이의를 다는 관객은 전혀 없을 게다. 아버지와 딸이라는 관계가 그런 감정을 자연스럽게 보장하는 거겠지.
그렇게 복수의 충동은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본인이 겪는 폭력이 가장 큰 동기를 남기는 것은 불문가지일 터.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복수의 플롯을 넘어서 '응징의 플롯'이 또 장르로 남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정의가 실종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징후랄까? 아무튼 이야기는 너무나 단순하다. 한 여자가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여자는 남자들에게 처절하게 복수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대목은 여자가 그 무지막지한 폭력으로부터 탈출할 기회를 한 번 얻는다는 거다. 그러나 그 기회는 공권력의 배신에 의해 무참히 묵살되고 만다. 자신을 구해줘야했던, 구해주리라 믿었던 보안관의 배신으로 인해 여자는 참혹한 성폭행을 당하게 되고 복수의 하이라이트 역시 그 보안관의 몫이 된다.
범인들의 묘사는 아주 전형이다. 시골 마을의 무료한 청년들 그리고 성실한 가장이자 종교인이고 법의 수호자이지만 은밀한 곳에서는 폭력을 일삼는 보안관. 복수의 방식도 재밌다. 언젠가 <쏘우>의 기계장치야 말로 플롯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죽이지 않으면 살 수 없거나, 서로 도와야 하는 딜레마의 상황을 고스란히 기계 장치로 옮겨놓은 것은 단순한 재치가 아니라 플롯과 드라마를 구축하는 장치들을 정확히 이해한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도 복수의 방식은 색깔을 분명히 한다. 캐릭터의 악행에 따라 그에 걸맞는 응징이 이어진다. 상당히 잔인한 복수임에도 쾌감을 느끼는 것은 그렇게 잘 맞아떨어진 구성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현실에서 이런 응징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영화에서, 또 다른 폭력성 짙은 방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헐리웃은 이런 소재를 그저 액션과 호러의 소재로서만 가치를 지닌다고 보는 시선도 느껴진다. 이건 한국의 다른 복수의 영화들을 보면 좀 더 명확해 진다. 몇몇 잘 만든 한국영화들에선 피해자가 폭행을 당하는 장면은 굳이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피해의 여파가 개인의 수치나 상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 사회에 까지 미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응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현실도 꼭 등장한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이건 쇼다. 아니면 판타지이다. 아주 말초의 감각을 자극하면서 보는 이도 폭행의 목격자로 동참케 하고 동시에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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