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자카르타 2014. 6. 15. 20:42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2014)

The Grand Budapest Hotel 
8.1
감독
웨스 앤더슨
출연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토니 레볼로리, 시얼샤 로넌, 애드리언 브로디
정보
미스터리, 어드벤처 | 미국, 독일 | 100 분 | 2014-03-20
글쓴이 평점  



영화는 이야기 속 이야기 속 이야기로 시작한다. 한 여자 아이가 어떤 작가의 책을 들고 그의 흉상을 찾아 참배하면, 그 작가는 자신의 젊은 시절 들었던 이야기를 회고한다. 바로 이 이야기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들은 이야기다. 호텔 지배인 쯤 될까? (난 이 영화를 보고 호텔 지배인이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무슈 구스타브는 호텔 그랜드 부다페스트 그 자체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뭐라고 할까? 그는 손님들과 윤리나 상식에 어긋나는 관계까지 가지만 그것은 착취나 폭력이라기 보다는 그의 서비스의 극한 쯤으로 표현되고 있다. 


어느 날 그의 오랜 고객 중 하나가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구스타브는 만사를 제쳐놓고 장례식에 참여한다. 죽은 부인은 말년에 자신에게 위로를 준 구스타브에게 <사과를 든 소년>이라는 걸작 그림을 물려주자, 상속인인 맏아들이 구스타브를 부인의 살인범으로 조작해 신고한다. 결국 구스타브는 감옥에 갇히게 되고 수감되기 직전에 호텔에 입사해 구스타브의 가르침을 받던 로비 보이와 그 여친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탈옥을 하게 된다. 거짓 증언을 한 부인의 집사를 찾아가는 길은 구스타브의 대외 친화력, 인맥의 힘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의 전화 한 통에 유럽 곳곳의 유명 호텔의 지배인들이 총동원 되어 그의 이동 경로를 확보해 준다. 


어렵사리 집사를 만나지만 맏아들이 보낸 자객에 의해 집사가 죽는다. 그러나 집사는 부인의 유언장,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할 것을 예감하고 자신의 재산을 모두 구스타브에게 물려주기로 한 유언장의 사본이 있음을 밝힌 상태. 구스타브와 로비 보이는 숨겨놓은 그림을 찾으려 하는데 전쟁의 여파는 호텔까지 장악해 버렸다. 로비 보이의 여친이 그림을 가지고 도망치려는데 마침 호텔을 방문한 상속자와 마주치고, 이어 상속자와 구스타브의 대결이 이어진다. 그러나 그림뒤에 유언장 사본을 발견하게 되고 결국 호텔과 막대한 유산은 구스타브에게 상속된다.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은 바로 로비보이다. 그 일이 있은지 얼마 후 그의 아내가 된 여친과 구스타브는 유명을 달리한다.


영화는 일단 발랄하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처럼 누명을 쓰고 그 누명을 벗기 위한 이야기로 진행되지만, 아이러니를 통해 긴장감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구스타브와 로비보이 콤비의 캐릭터로 간지러운 웃음을 만들어 낸다. 그 웃음의 원천이 뭔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그건 슬랩스틱처럼 배우들의 어리석은 광대짓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뛰어난 능력과 독특한 인성을 가진 인물에게서 나온다. 구스타브는 손님들에게 성접대를 하면서도 윤리에 반하는 경계를 넘지 않는다. 엄격한 위계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그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인 듯 하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아부나 불법은 전혀 저지르지 않는다. 오히려 군인의 총칼에 맞서 로비보이를 지킬만큼 강한 의협심을 보이기도 하다. 수완 면에서도 뛰어나다. 어떻게 얻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감옥에서 그는 스프를 만들어 다른 죄수들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뒤에 이런 관계는 그가 탈옥을 하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아마 그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 주먹다짐을 벌였다는 것도 그저 허풍이 아닐지 모른다. 그의 선심공세가 그저 목숨을 부지하려는 소인배의 처세술 이상임을 영화 곳곳에서 증명하고 있다. 이 모든 모순된 것을 관통하는 것은 그의 진정성이 아닐지. 


말년의 로비 보이는 구스타브의 세계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그는 자신이 만든 허상의 세계를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고 술회한다. 그 세계의 견고함이나 취약함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캐릭터의 일관성은 확실해 보인다. 어떤 도덕이나 법률의 잣대에서도 벗어나 있으면서도 스스로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모두들 그런 그에게 호감을 가지며 그에게 위로를 얻는다. 스스로는 끝없이 고독하다. 이 인간상이 그토록 매력을 지닌 것은 왜 일까? 그 고독한 유희삼매가 웃음지게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잔한 것은 왜일까? 


참 귀익은 이름이라 이전에 몇 편은 봤겠거니 싶었는데...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이 작품이 처음이다. 그의 작품을 거슬러 올라가 봐야겠다. 화려한 배우들을 감칠맛 나는 연기를 맛보는 재미도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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