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기담

자카르타 2014. 9. 13. 23:01



아주 오래 전에 본 영화. 요즘 괜찮은 공포영화를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기담을 봤다. 

서로 다른 이야기인 듯 싶은 에피소드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들어간다. 전체를 하나로 꿰는 이야기는 없지만 이 또한 탁월한 솜씨다. 

생과 사의 경계에 있는 병원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세 명의 캐릭터와 세 가지의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액자의 역할을 하는 이야기가 앞 뒤로 배치되어 있기는 하다.) 

과연 이 세 개의 에피소드에서 공포를 유발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플롯으로 치자면 어떤 플롯이 될 수 있을까? 각 에피소드는 상황을 만드는 사건은 있을지 모르지만 딱히 플롯이라고 할만한 사건들은 보이지 않는다. 가장 마지막 에피소드 정도가 플롯이 있다고 할까? 하지만 그마저도 살인 사건의 연쇄일 뿐, 가장 큰 혼란을 부르는 수수께끼를 만들고 정서를 만든 것은 다른 요소가 아닐까, 싶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영혼과 결혼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다. 여기엔 요절한 딸의 혼령을 위로하려는 엄마의 이기심이 모티브로 작용한다. 주인공인 남자에게선 다른 욕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요절한 여학생의 시신을 보고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정도일까? 이렇게 밋밋한 사건에서 어떻게 그렇게 강한 정서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이 도입부는 그런 면에서 아주 흥미롭다. 

첫번째 기담은 흔히들 생각하는 병원 기담과 이 영화의 갈림길을 묘사하고 있다. 시체 안치실의 공포가 떡밥으로 제시되고 그 가운에 요절한 아름다운 소녀의 나신을 놓으면서 긴장을 만들어낸다. 참살의 원인인 음욕을 암시하듯, 그러나 전면에 드러내지는 않으면서 긴장을 탄탄하게 유지한다. 그리고 기괴함, 시체의 파괴가 그로테스크였다고 했나?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달팽이의 이미지들이 전체 에피소드에 기괴한 느낌을 강화한다. 아무 수수께끼도 제시하지 않고, 플롯도 없는 기담이라니, 두고두고 생각해볼 공포물이다. 


첫번째 에피소드에 비하면 두번째는 공포의 근원을 세밀하게 묘사해 나간다. 죄책감. 그 죄책감을 설명하는 것과 혼령의 귀환을 함께 강화해 나가다가 뜻밖의 결론으로 맺는다. 세번째 에피소드의 핵심은 과연 누가 귀신인가, 이다. 이 단순하고 고루한 질문을 꽤 긴 시간을 들여서 풀어나가지만 살인사건이 주는 긴장과 함께 기존에 귀신 캐릭터에 대한 관습을 한 번 (아주 정직하게) 뒤집으면서 긴장을 만들어 낸다. 


넌플롯의 서사들, 그리고 주제가 희박한 이야기. 대신 공포의 순수한 느낌들이 강화된 것은 탁월한 연출 탓에 빛을 본다. 요즘의 공포영화들이 그렇듯이 어설프게 사회 문제를 원한의 이유로 끌어오는 것보다는 훨씬 대담하고 영리한 선택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랬기 때문에 이 영화가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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