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열한시

자카르타 2014. 9. 14. 00:59



시간이동장치를 개발 중인 갑은 연구를 중단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는 귀환 하루 전 다음 날로 갔다오는 파일럿을 감행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가 도착한 다음 날 11시의 연구소는 재난이 휩쓸고 간 상태다. 

심지어는 누군가 갑을 공격하기까지. 

현재로 돌아온 갑은 재난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그 행동이 오히려 재난을 부추기게 된다는 얘기... 


시간여행에 대한 이론 연구가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알고 있다. 기존의 학설은 미래로는 갈 수 있지만 과거로는 갈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떤 보고에서는 과거로도 갈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다. 실험 물리에서는 미래로 입자를 보내는 데 성공했다고도 하고. 


하지만 굳이 이론 물리나 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시간 여행이 그리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아주 간단한 논리로 증명이 된다. 지금 미래에서 온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스티븐 호킹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인과율을 어기기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정을 지었다. 누군가 과거로 간다면 이미 형성된 과거와 모순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과학과는 달리 서사 분야에서는 그 모순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타임 크라임>이나 <트라이앵글>같은 영화들은 그런 인과율의 모순을, 영화의 긴장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로 삼는다. 이들 영화에서 인과율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식은 수수께끼다. 물음표가 찍힌 인물들이 과거 혹은 미래의 나라를 설정이다. 교묘하게 쓰여진 이들 시나리오에서는 정말로 시간은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면서 모순을 일으키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교차되곤 한다. 


영화 <열한시>는 그런 소재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앞서 얘기한 영화들의 전략을 따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노잉>이나 <데스티네이션>처럼 이미 예고된 재앙이 운명이 되는 '비극'의 공식을 차용하고 있다. 비극이란 게 뭔가? 거역할 수 없는 운명, 그에 저항하는 인간의 행동이 오히려 운명이라는 개미지옥으로 빨려들어가는 발버둥이 된다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뻔하다'고 하기엔 인류 서사의 공약수가 되어버린 이 서사 패턴을 답습하는 것을 패착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문제는 그 전형의 구조에 새로 입히게 될 사건과 캐릭터들이 전혀 매력이 없었다는 게 문제다. 


이미 관객들도 알고 있는 '벗어날 수 없음'에 살을 입히는 사건들이 그다지 새롭지도 치밀하지도 그럴듯 하지도 않다. 처음에 두 연인이 위기에 처하는 장면도 그런 어마어마한 연구 시스템이 겨우 자동차 점화 장치만한 부품이 빠져서 폭발이 일어난다는 게 그냥 헛웃음이 나온다. 매 갈림길에서 선택하는 행동도 그다지 개연성 있게 보이지 않고. 피하려는 노력이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그 힘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그저 합을 맞추려 했다는 느낌 뿐이다.


이 좋은 배우들을 데리고...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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