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Line 1
정부의 조직인 걸로 보이는 남자들이 한 여고생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그 후 이 일에 가담했던 사람들에게 응징이 가해진다. 이들을 응징하는 자경단원들은 가장 말단부터 시작해 이 지시를 내린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tory Line 2
자경단원들은 제각각 다른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아마도 이들이 이런 극단의 행동에 나선 것도 다 그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들 각기 다른 가해자들을 모두 한 사람이 연기하고 있다. 그는 앞서 여고생을 살해한 조직의 가장 말단을 연기한 배우다. 이런 형식 실험을 통해 감독은 폭력의 순환고리를 완성한다. 다만 색다른 것이 있다면 그 폭력의 연쇄가 무고한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복수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복수는 정작 자신을 위해한 가해자를 향하지 않고 다른 ‘거악’으로 묘사되는 사건의 가해자들을 향한다. 감독은 그저 이 두 가해자 진영을 한 사람의 배우에게 맡김으로써 가해와 복수의 쌍을 작위적으로 이뤄놓는다.
오히려 가장 자연스러운 순환 고리는 자경단의 리더에서 완성된다. 그는 과거 군대시절 후임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다. 그 후임은 지금 스님이 되어 있는데 이 스님으로 연기하는 배우 역시 앞서 다른 자경단원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람으로 연기한 배우와 동일인물이다. 이 순환 고리에서는 리더의 폭력이 구조의 폭력으로 이어지면서 무고한 자들에 대한 폭력으로 일관성을 유지한다.
Story Line 3
조직의 말단은 자경단원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자경단원들을 추적한다. 그 결과 말단은 자신에게 악행을 지시한 최고 상단과 자신에게 고문을 가한 자경단의 리더에게 모두 복수한다.
이 영화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영화가 풍성한 텍스트라는 의미는 아니다. 많은 얘기를 하기 위해서 구조를 이리저리 뒤틀어 놓았지만 모두 얄팍하다. ‘국가’라는 공인된 폭력이 정의를 상실했을 때 이를 회복하기 위한 자경단원의 행동이 던지는 사적 복수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도 어떤 갈등을 만들지 않고, 폭력의 전염성을 얘기하기에는 자경단의 폭력(정확히는 자경단 리더의 폭력)은 일관되게 초점을 유지하고 수위를 높일 때에도 나름의 상당한 근거를 가지면서 진행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폭력성 자체를 고발하는, 폭력의 연쇄나 대물림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리더가 과거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그 개인의 모순을 드러낼 뿐이다. 피해자였던 후임이 조직의 말단을 연기했던 배우와 동일인물이기에 폭력의 연쇄라는 순환고리를 애써 만들지만 <똥파리>의 마지막에서 볼 수 있었던 충격, 의미의 확산은 느껴지지 않는다.
꽤 오랫동안 김기덕의 영화를 보지 않았다. 초기작 어디까지 따라가다가 이렇게 불편해하면서 굳이 영화를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그 이후로는 보지 않았다. 작년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모두 찾아보면서 10년 넘는 세월 동안 오로지 일관되게 지켜온 것들과 그러면서도 변화한 것들이 눈에 띄어 상당히 재밌게 봤던 기억도 있고 해서 올해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쭉 훑어보려고 하는 중이다. 하지만 가장 최근작인 <일대일>은 오히려 김기덕 감독의 쇠퇴를 느끼게 한다.
이전 영화들의 실험이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큰 불안을 느끼게 했다면 지금의 실험들은 그저 허구임을 드러내는 요람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