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바바둑

자카르타 2015. 3. 7. 23:07



바바둑

The Babadook 
5.6
감독
제니퍼 켄트
출연
에시 데이비스, 다니엘 헨셜, 티파니 린달-나이트, 벤자민 윈스피어, 노아 와이즈먼
정보
공포, 스릴러 | 오스트레일리아 | 94 분 | -
글쓴이 평점  


어떤 작가는 심각한 위통을 겪으면서 마치 뱃속에 괴물이 있어 위벽을 뜯어먹는 것 같았다고 한다. 눈치 챘겠지만 숙주의 배를 뚫고 나오는 <에일리언>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슈퍼 내추럴> 같은 심령물은 보면서 작품을 구상한 작가의 동기를 상상하게 된다. 아마도 그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건 사고를 보면서 ‘악마’나 ‘괴물’의 존재를 상정해야만 하는 막다른 곳에 봉착한 것은 아닐까? 그야말로 귀신이 씌이지 않고서는 어찌 저럴 수 있느냐고. 나도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낮에는 창이 없는 고시원에서 자고 해가 지면 편의점 알바를 하는 청년들을 보면 저들은 어쩌면 뱀파이어에 물린 게 아닐까? 그 뱀파이어는 아마도 ‘자본’이 아닐까? 


모르긴 해도 <바바둑>의 작가는 자신의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이 시나리오를 썼던 게 틀림없다. 남편을 잃고 육아와 가사와 생계를 떠맡은 주인공은 바바둑이라는 악령에 씌이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칼을 들이댄다. 과연 그녀는 귀신이 들렸던 걸까? 아니면 그저 삶에 지쳐 미쳐버린 걸까? 둘 사이에 차이는 있는 걸까? 몸 둘 곳,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에게는 ‘모성애’라는 것도 얼마나 각성과 의지가 필요한 짐이 되는지를 절절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에 취해 고백을 하자면 나도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4년 전에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한 아동센터 아이들이 어찌나 말을 안 듣는지 정말 그 아이들을 만나기로 한 전날이면 체증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저 빨리 교육 일정이 끝나기만 기다렸는데 어느 날인가, 장마비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늦어진다고 연락이 왔다. 그럴 때는 꼭 가장 말을 안듣는 녀석이 제일 먼저 온다. 그 녀석이 내게 닭싸움을 하자고 했고, 나는 옳다쿠나! 닭싸움을 핑계로 녀석을 바닥에 패대기를 쳐버렸다. 41살 아저씨가 10살인가 11살인가 하는 아이에게 한 치졸한 짓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요즘 어린이집 교사들의 뉴스를 접하면서 이 일이 자꾸 떠오른다. 나도 그다지 다를 것 없지 않았나. 그리고 더불어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한 짓과 그들이 한 짓에 대한 정죄, 단죄와는 별개로 사람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드는 구조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야지 않을까? 그런데 하는 얘기라고는 오로지 CCTV뿐이다. 


<바바둑>아니 <슈퍼 내추럴>이 현상의 원인을 ‘악령’이라는 은유로 외화시켰다면 어린이집 폭력에 대한 대안으로 ‘CCTV’를 내세우는 건 원인엔 관심도 없고 그저 현상만 눈에 띄지 않게 하겠다는 뜻이다. 현실에 무력하기는 <바바둑>이나 CCTV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바바둑>은 여기서 다른 심령물과는 다른 경로를 간다. 다른 심령물이 외화된 존재를 물리치면서 갈등을 애써 봉합한다면 <바바둑>은 그런 판타지를 거부한다. 그 결말은 다들 영화로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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