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진주성 전쟁기

자카르타 2015. 4. 30. 18:41



진주성 전쟁기

저자
박상하 지음
출판사
어문학사 | 2007-01-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반양장본ㅣ253쪽ㅣA5ㅣ깨끗합니다.(책소개) 1994년 「문예사...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진주성 싸움을 소재로 이야기를 쓴지 벌써 3년째에 접어든다. 아마 이 책도 시작 무렵 읽었을 텐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발견을 많이 하게 됐다. 그 사이 임진왜란에 대해 익힌 정보들이 좀 더 이 책의 내용들을 낯익게 만든다. 


이번에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황진이다. 1591년 통신사 무관으로 일본에 갔다가 일본의 침략야욕을 정확히 간파하고 전쟁을 대비해야한다고 강하게 주장을 한 것부터, 권율 장군의 행주산성 싸움 때 홀로 포위망을 뚫고 배를 통해 성 안으로 무기를 공급하기도 하는 등 임진왜란 초반의 중요한 전투마다 그의 자취를 만날 수 있었다. 


9일간의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여드렛날 그가 죽기까지 그가 의병과 관군으로 양분된 지휘체계 안에서 고군분투했음도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 아마 이 인물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도 역사 이야기를 다루는 이들에게 의미있는 미션이 될 수도 있겠다. 


반면 서예원이란 사람은 한심함의 극치를 달린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임진왜란 훨씬 전, 북방에서 변방 정찰을 나섰다가 수하 80명이 전원 몰살을 당할 때 홀로 살아나온 사람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막이야 모르는 일이지만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서 그가 보인 행태를 보면 어떻게 목숨을 부지했을지 가히 상상이 간다. 그의 비겁을 인간의 나약함이려니, 연민의 시선을 가지고 볼 구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목사로서 허언으로 동료들에게 군세를 과장하고, 절체절명의 시기에 위기를 초래하고 (그래서 황진이 죽게 만들고) 결국에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수하들에게 속좁은 모습을 보이는 것 등 여러가지로 황진과 대비되는 인물이다. 


현실이, 그리고 현실을 기록한 역사가 이토록 서사의 갈등 요소를 정확하게 담고 있는 것을 보면 역사와 사극, 허구와 기록의 차이가 의미없게 다가온다. 이 책 역시 장편역사소설을 표방하고 있지만 세부의 묘사를 빼놓고 본다면 진주성 싸움에 대한 역사 기록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다. 



================ 메모 ================



조총 : 화약을 장전하여 발사하는 속도는 1분에 4발, 명중률이 높은 사정거리는 약 50미터 정도였다. 


29쪽 

통신사 : 이때 김성일은 정사 황윤길에 이어 부사의 신분으로 서장관 허성, 수행 무관 황진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일본으로 건너가 풍신수길을 만나 조선의 국서를 전달한 뒤, 일본의 국서를 받아 1591년 1월에 돌아왔다. 


김성일 : 경상우병사로 임명되어 진주성으로 향하는 부임길에 공교롭게도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 한양으로 압송 중에 경상 우도 초유사(국난을 수습하는 지역 특사)로 다시금 임명되었다. (우병사와 직급이 같음) 


진주성 : 임진왜란 당시 경상 우병영이 자리하고 있었음. 


64쪽

...오죽이나 하였으면 진군하는 이들 북정군의 모습이 마치 양떼가 이동하는 것 같다고까지 일컬었겠는가. 


72쪽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의 진진포포와 달리 방방곡곡으로 불리우는 조선의 특이한 지세를 고려한데서 나온 전략이었다. 


76쪽 

...전라 절도사 권율은 즉시 전쟁 태세에 들어갔다. 먼저 그는 금산에서 전주로 넘어오는 두 고갯길에 병력을 배치시켰다. 곰치(427미터) 고갯길에는 김제 군수 정담으로 하여금, 이치(350미터) 고갯길에는 화순의 동복 현감 황진으로 하여금 각기 군사 2천여 명씩을 주어 일본군을 막아내게 했다. 


77쪽

녹채 : 가시 방책 

목책 

거마채 : 죽창을 적 방향으로 꽂아 적의 말이 찔리도록 한 방어 시설. 


79쪽 

... 같은 시각, 일본 제6군의 주력 부대가 쳐들어온 이치 고갯길 전쟁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화순의 동복 현감 황진이 총상을 입고 쓰러진 가운데, 전라 절도사 권율 장군이 뛰어들어 아침부터 날이 저물 때까지 이치 고갯길을 숨 가쁘게 지켜냈다. 


88쪽

... 다만 진주 목사 이경과 훗날 진주성 제1차 전쟁에서 대첩을 거두게 될 판관 김시민만이 신임 초유사를 맞이했을 따름이다. 


94쪽

...김시민은 개선장군으로 귀환했다. 일본군의 새로운 병기인 조총을 조선식으로 개량시킨 총통을 만들어 이날의 거창 전쟁을 승리로 장식한데 대해, 종6품의 판관에서 일약 종3품의 진주 목사로 명받았던 것이다. 


경상 감사 김수는 때마침 전라도에 내려와 있는 좌의정 겸 도체찰사(최고 군사령관) 정철에게 지원군을 요청했다. 


102쪽 

일본군의 조총을 조선식으로 개량시킨 총통도 새로이 1백70여 정이나 만들어 그 사용법을 연마시킴으로써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화포 장인 이장손이 발명했다는 새로운 화포도 적극적으로 들여와 총통과 함께 중무장시켰다. 다름 아닌 비격진천뢰가 바로 그것이다. 


103쪽 

... 9월 24일, 마침내 일본군에 진격 명령이 떨어졌다. ... 그럴 즈음, 28살의 새파란 경상 우병사 유승인 장군도 척후병으로부터 숨 가쁜 첩보를 받고 있었다. 


115쪽

... 김시민 곁에 서 있던 곤양 군수 이광악이 그의 눈가에 맺힌 이슬방울을 발견하곤 서둘러 입을 열었다. 


120쪽 

... 더욱이나 그들의 행색 또한 지금껏 본 일이 없는 현란한 것들이었다. 자신의 대오를 찾지 못해 말을 타고 어지러이 달려 다니는 기마병들이 곳곳에 눈에 띄는가하면, 혹은 둥근 금부채를 긴 장대 끝에 꽂아들고 흔드는 놈, 닭털로 만든 관을 뒤집어 쓴 놈, 머리를 풀어헤친 산발한 가면을 얼굴에 뒤집어 쓴 놈, 뿔 달린 흉측한 가면을 쓴 놈에 이르기까지 이루 다 손꼽기 어려울 정도였다. 


137쪽 

... "그대들도 보이는가! 나의 엄지는 이미 떨어져 나간 지 오래다! 그러나 검지와 중지가 남아 있어 아직은 활시위를 당길 수 있다!" 


149쪽

뿌옇게 동녘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할 즘, 그러나 격전 중에 그만 김시민이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 그 순간 하늘도 슬펐던지 난데없는 천둥 번개가 천지를 뒤흔들어 놓았다. 날이 뿌옇게 밝았으나 짙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천둥 번개와 함께 폭우마저 쏟아져 내려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161쪽

... 작은 읍성에 불과한 진주성을 공격하는데 무려 10만이 넘는 대군을 파견한다는 일본의 공공연한 호언장담에 그만 기가 질려버렸다. 

기껏해야 강화 회담을 위해 일본군을 따라 부산진까지 내려가있던 명 나라의 선봉대장 심유경이 일본군 제1군의 고니시 유기나가 장군에게 진주성 공격을 중지할 것을 요청했으나 별반 소용이 없었다. 


163쪽 

진주성을 지키기 위해서 조선측이 준비한 내용들. 


186쪽

... "장군, 이대로 싸우다간 적의 수효에 밀려 하루 이틀을 더 견디어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죽음을 각오한 밀사를 성 밖으로 내보내어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을 관군의 지원을 얻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 강희보는 자신의 충복 임우화를 불러들였다. 임우화 역시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임무를 기필코 완수할 것을 맹세했다. 


187쪽

... 이날 밤 이후 일본군은 공격을 감행할 때마다 커다란 널빤지 과녁에다 큰 대 자로 사지를 결박시킨 임우화를 앞장세워 성 안에서 쏘아대는 화살을 일부러 맞도록 하곤 했다. 


188쪽 

또한 연일 파상 공격에도 끝내 성벽을 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일본군은 전에 없이 성 안으로 통하는 지하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197쪽

김천일은 이날 진주 목사 서예원으 전격 경질하고, 성 안의 병사들에게도 그와 같은 사실을 알렸다. ... 명색이 목사라는 장군이 새파랗게 겁에 질려 쥐구멍만 찾아다닌 결과였다. ... 이 때문에 서예원이 경질되고 대신 장윤이 새로이 임명되었다는 수뇌부의 결정에 성 안의 병사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반겼다. (나흗날) 


198쪽 

충청 병사 황진이 방어를 맡은 진주성 동문 밖 33보(약 20미터) 쯤 되는 곳에 적군이 흙을 쌓아올려 토산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토산이 만들어지자 그 위에 높다란 망루를 세우고서는 성 안을 내려다보며 조총과 화포를 거침없이 쏘아댔다. 비격진천뢰가 바닥나지만 않았더라면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도 있는 지척의 가까운 거리였다. 


199쪽 

그런 결과 이날 마침내 진주성 서북쪽 방면의 성벽이 적군에게 처음으로 뚫리고야 말았다. (닷샛날) 


200쪽 

적의 10만 대군이 진주성을 겹겹이 에워싼 채 파상 공격을 가한지 닷새째가 되는 이날, 마침내 진주성 서북쪽 방면의 성벽이 처음으로 뚫리고 말았으나 황진의 기지와 용맹으로 위기를 가까스로 넘길 수 있었다. 


201쪽 

(엿샛날) 일본군은 전혀 색다른 전술로 총공격에 나섰는데, 신형 전차인 귀갑차와 함께 전날에는 볼 수 없었던 짐승의 생가죽을 대거 동원했다. 방어군의 화살과 총포를 막기 위해 짐승의 생가죽을 덧씌운 나무 궤를 머리와 등에 메고서 일제히 성벽을 기어올랐다. 


205쪽 

이 틈을 노려 적군이 귀갑차에 은신하여 성벽 바로 밑까지 벌 떼처럼 달라붙었다. 그런 다음 철추로 내려쳐 성벽의 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13쪽

하루면 몇 번이고 서북쪽 방향을 간절히 바라보며, 혹시나 달려오고 있을 지도 모르는 지원군을 목이 타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226쪽

가까스로 도살을 면해 간혹 살아있는 자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런 사람들은 이미 참혹한 살육을 목격하면서 넋이 나가버렸거나 정신이 돌아버려 살육의 흥미를 느끼지 못해 내버려둔 것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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