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Skeleton Key

자카르타 2015. 9. 27. 23:17



스켈리톤 키 (2005)

The Skeleton Key 
7.6
감독
이안 소프틀리
출연
케이트 허드슨, 지나 롤랜즈, 존 허트, 피터 사스가드, 조이 브라이언트
정보
미스터리, 공포 | 미국, 독일 | 103 분 | 2005-08-25
글쓴이 평점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말로 클린턴이 대권을 잡았는데. 사실 이런 식의 논법은 서사에서 반전을 만드는 핵심 기술이다. 

<식스센스>는 아내와 주인공이 화해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관객에게 샤말란은 '바보들! 무슨 소리야. 이들의 사랑은 죽음마저도 끊지 못했다고'라며 뒤통수를 때렸고, <마더>는 모성애의 힘을 믿는 관객들에게 '바보야. 그 알량한 모성애가 실은 이 애를 이렇게 만든 거였거든'하고 비웃었다. 다른 하수 반전 영화들이 관객의 선택지를 어떻게 빗겨갈까 고민할 때 상수 반전영화들은 이런 식으로 관객들의 질문 자체를 비웃는다. 


<스켈러튼 키>에서도 이런 식의 반전으로 마지막 한방을 시원하게 날린다. 시한부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인 앨리스는 자신의 환자가 부두교 광신자인 아내에게 폭력을 당한다고 판단하고 그를 구하려고 한다. 자연히 관객에게는 몇가지 질문과 선택지가 생긴다. 결국 앨리스는 남자를 구해낼까? 아니면 혹시 앨리스가 편집증에 시달리는 광녀가 아닐까? 설마 앨리스 편인 듯한 변호사가 배신을 하는 건 아니겠지? 클라이막스에 이르면 신기하게도 영화는 이런 관객의 선택지들을 충실하게, 그래서 식상하리만큼 따라간다. '설마 그 결말은 아니겠지?' 팔장을 끼고 영화를 만만하게 볼 즈음, 영화는 보란듯이 그 모든 기대와 예측을 뒤집는다. 실로 절묘한 한판 뒤집기. '바보야. 저들의 목표는 남자가 아니라 앨리스라고!'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영화가 이런 뒤집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은 결국 이긴다는 공식을 어긴, 일종의 반칙이지만 그걸 충분히 상쇄할만한 구석이 꽤 있다. 특히 주인공이 주술에 대해 갖는 태도의 변화는 과연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주술이나 미신을 믿지 않지만 상대가 믿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에게 영향을 줄 목적으로 주술을 쓴다면, 그건 결국 내가 그 주술을 믿는다는 얘기. 싸우면서 닮아간달까? 타인을 알리바이 삼아 마음껏 타락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며 상대에 대한 혐오를 양산하는 진영 논리를 떠올리게도 하고. 


암튼 백인 주인에 대한 흑인 노예의 저주가 완벽하게 이뤄졌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이만큼 뒤끝이 구린 영화도 참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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