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 빌뇌브의 작품을 보면 미로가 떠오른다. 다른 서사들이 주변의 다른 서브 플롯들을 휘감으면서 마지막 종착지로 질주하는 것과는 달리, 그의 작품은 출구를 향한 집념도 드러내지 않고 미로 속을 거닌다. <프리즈너스>에서 미로를 그리던 남자는 어쩌면 서사를 창작하는 드니 빌뇌브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은 꼬리를 문 뱀을 떠올리게 한다. <그을린 사랑>의 얽히고설킨 친족관계가 그렇듯이, <프리즈너스>에서 휴잭맨이 아이를 잃은 피해자와 복수의 광기에 싸인 가해자 사이를 오가듯이 또 <에너미>에서 쌍둥이 형제의 운명이 뒤바뀌듯이 누가 악이고 선인지 분명하지 않다. 서로의 꼬리를 먹어 들어간 끝에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는 뱀들처럼 드니 빌뇌브의 서사도 결국은 0으로 수렴하고 만다.
<시카리오> 역시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경계를 가뿐하게 무시해 버린다. 그러나 그것으로 요약하고 정리하기에는 이 영화, 상당히 불편하다. 내 속에 빤한 뭔가를 건드리고 깨뜨려서 불편한 게 아니라 감독의 빤한 스타일을 우려먹는 느낌이어서 불편하다. 누군가는 2015년 최고의 영화라고 두 엄지를 바짝 치켜들지만 동의하지 못하겠다. 영화에 등장하는 지하 터널이 쉽게 뚫리는 것만큼이나 서사는 단선으로 곧게 질주하고 그 위에 감독의 스타일이 버무려졌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린다.
가장 불만스러운 것은 여자 주인공. 그저 서사를 관찰하고 전달하는 임무 외에 그다지 이 인물이 왜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또 다른 불법과 불의를 무력하게 방관해야만 하는 그의 무력감을 관객에게 느끼게 하려는 것이었을까? 아마도 그게 유일한 역할이었을 것 같은데, 역설이지만 그러기엔 이 캐릭터가 너무나 무력하다. 영화에서 델 토로가 얘기하듯이 늑대뿐인 세상에서 시종일관 의심하지만 매번 늑대들에게 설득을 당하다가 마지막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음을 발견하고 손을 놓아버린다.
영화의 한 축인 여자 주인공이 그렇게 맥없이 무너져 내리면서 영화도 그냥 씬 별로 산만하게 흩어진다. 복잡해 보이는 작전도 ‘왜 굳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연성 없이 틈을 보이면서 느슨하게 전개된다. 자녀를 잃은 피해자가 최소 세 가정을 파괴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처음부터 배달원 가정, 송금책 가정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도 작위스럽고. 마치 흐릿하게 보이던 걸작이 선명해지면서 조악한 터치를 드러낸 것만 같다.
그나저나 드니 빌뇌브가 <블레이드 러너> 리메이크판을 연출한다고라? 그건 또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