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정의를 부탁해>에서 소개한 책들을 틈나는 대로 살펴보려고 한다. 첫번째 책은 <사당동 더하기 25>
1986년부터 2011년까지 25년 동안 '금선 할머니'의 가계를 추적한 연구를 정리한 책이다.
금선 할머니는 청진에서 여관업을 하는 시댁에서 생활하다가 해방이 되고 소련군을 피해 월남한 사람이다. 이 책에서 반복되는 표현 중의 하나인 '몸뚱아리 하나만 가지고' 월남한 금선 할머니는 그야 말로 먹고 살기 위해 일을 가리지 않는다. 날품과 행상 심지어 양동 하꼬방에서 여자를 파는 일까지 하던 중 철거 때문에 사당동으로 왔다고 한다. '왔다는 표현'은 어패가 있다 60년대 재개발 때문에 강제 이주한 사람들이 대개 그랬듯이 트럭에 실려 숲이 우거진 사당동 야산에 버려졌다.
이후 다시 재개발이 벌어지는 80년대 중반까지 사당동 주민들은 산을 허물어 진흙벽돌로 집을 짓고 비탈에 길을 내고 수도를 놓고 전기를 끌어오는 등 '겨우 살만한 동네'를 만들어 갔고, 그와 동시에 전국에서 서울에 몰려든 빈민들이 고여들었다. 금선 할머니는 수 차례 강제 철거를 피해 다른 집으로 이주를 거듭하다가, 벽이 허물어진 집에서 덜덜 떨며 밥을 먹던 기억을 손주들에게 남기고 상계동 임대 아파트를 얻어 이주하게 되었다.
애초 사당동 철거민의 삶을 연구하려던 연구진들이 2년 반의 연구 기한이 끝나고 다시 금선 할머니 댁에 집중해 25년을 이어간 목적은 주거 복지가 계급 이동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처음 연구의 대상이었던 20여 가정 중에서 임대주택을 얻은 것은 금선 할머니네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들인 수일 씨를 주민등록에서 빼고 조손가정으로 위장을 하는 편법을 동워해야 겨우 할 수 있었던 일이다.
그럼 연구진들의 기대대로 금선 할머니네는 빈민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책은 그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마무리를 짓는다. 오히려 이후 또 다른 25년이 지나도 그 질문에 대한 전망은 어둡다는 고백으로 끝을 맺는다. 금선 할머니의 아들 수일 씨는 막노동을 전전하다가 이제는 일을 그만둔 상태다. 자녀를 낳은 첫번째 아내는 일찌감치 가출을 했고, 연변에서 얻은 두번째 부인은 천여만 원을 챙겨서 따로 살 집을 구하겠다고 나가서는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나중에 연락이 되었을 때 왜 속였느냐는 수일 씨의 질문에 연변댁은 '다 그런 거지 뭐'라고 대답을 했단다.
'다 그런 거지 뭐' 윤리에 대한 비아냥이자 꿈에 대한 체념이 뒤섞인 이런 말은 수일 씨 가족에게 종종 듣는 얘기다. 수일 씨의 2남 1녀 중 막내인 덕주 씨는 중학교를 중퇴한 뒤 교도소를 들락날락 거렸다는 얘기를 연구진에게 들려주며 '그때는 다 그랬다'는 얘기를 덧붙인다. 큰아들 영주씨가 목사가 되는 꿈을 안고 사설 신학교를 다니다 체육관을 차리는 꿈을 쫓다가 그마저도 돈이 없어 포기하고 이제는 아버지처럼 건설 노동일을 하면서 환경 미화원이 되는 꿈을 꾸고, 누나인 은주 씨가 드라마의 로맨스를 꿈꾸며 잦은 가출을 하는 것과 달리 덕주 씨는 꿈이 없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는 그 어떤 꿈도 자신들은 꿀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돌고 돌고 돌고' 그가 자신의 가난을 묘사할 때 쓰는 말이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그 가난은 이제 영주 씨, 은주 씨의 자녀들에게 대물림 되는 중이다.
자본에 의한 부의 계승과 가난의 대물림은 이미 피케티 같은 학자들이 실증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굳이 25년이란 시간을 들여 그 사실을 지켜봐야 할 이유는 뭘까? 처음 앞부분의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물음이다. 책 중반에 금선 할머니와 그 집안 사람들의 생애사를 읽으면서 이 책의 또 다른 목적을 발견했다. 이들의 생애사를 채우고 있는 일상들은 드라마 소재로 써도 작위다 싶을 정도로 사건들로 가득하다. 음주, 도박, 가정 폭력, 가출, 외도, 범죄 이력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산체스네 아이들>의 저자 오스카 루이스가 지적한 '빈곤 문화'다. 오스카 루이스가 '빈곤 문화'를 '빈곤'의 원인으로 지적한데 반해(내가 읽은 건 아니고 이 책의 저자의 판단), 이 책의 저자는 그게 아니라고 단언한다.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었다는 얘기. 금선 할머니 댁의 가난의 시작을 금선 할머니로 본다면 '빈곤 문화'는 금선 할머니에게서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히려 그 뒤의 빈곤의 생활이 이들에게 당장의 쾌락을 제어할 희망을 앗아갔고 결국 '빈곤 문화'에 찌들게 했다는 얘기다.
책을 읽는 내내, 특히 뒷부분 여러 사람의 생애사를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도대체 어찌할 수 없는 가난의 굴레와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개선은 커녕 '복지병' 운운하는 정치와 행정... 희망이 없어서 화투에 곗돈에 복권에, 이제는 대포 통장에 휩쓸리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한발만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줄타기하는 심정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구원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고민의 시발점이자, 우리 민낯의 확인을 위해 많이들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