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제임스 팰런은 60대에 접어든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뇌 단층 사진이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전부터 친구들이 자신을 향해 사이코패스라며 빈정거린 적이 있지만 팰런 스스로는 자신이 어떻게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 책은 그 이후 팰런이 자신의 가계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유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자신의 이론을 현실에 맞춰 바꿔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그의 현실이란 그가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졌다는 것이었고, 그럼에도 그가 반사회적인 범법자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전과 후성 유전을 구분하면서 유전의 명백한 한계가 어떻게 재조직되고 행동을 변형시켜 나갈 수 있는지를, 최근의 연구 결과를 동원해 설명한다. 나로서는 버거운 유전학,뇌과학의 전문용어가 난무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저자는 후성유전을 띄어쓰기 규칙에 비유한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라는 단어의 순서가 유전자라면 후성유전자는 이 유전자를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라고 읽을지,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로 읽을지를 결정한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 후성유전을 결정하는 것은 유년기의 경험이고, 이때 폭력에 노출되지 않고 세심한 훈육과 보살핌을 받는다면 사이코패스 유전자도 다른 방식으로 발현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 명백한 증거는 물론 저자 자신이다.
상당한 분량을 통해 후성유전에 설명하고 있는데, 내 이해의 범위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인간 개체에 발현되는 어떤 행동이나 증상은 단 한 가지 유전자와 일대일 매칭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적어도 수십 가지 많게는 수백, 수천 가지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이 전에도 맨델은 운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그 밖에도 이 책은 마음에 대한 재밌는 구분을 소개한다. 성격personality과 인격Character는 어떻게 다를까? 또 공감과 동정은 어떻게 다를까? 우선 공감과 동정을 구분하자면 상대의 마음이 되는 것이 공감이라면 동정은 상대의 곤란함을 해결해주려는 욕구라고 한다. 즉 동정은 '마음 이론'에서 얘기하는, 나와는 다른 상대의 마음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에 바탕한다고 한다. 사이코패스의 경우 공감은 못하지만 동정은 할 수 있다는 얘기. 덱스터- 그가 진짜 사이코패스인지 유년의 트라우마인지는 여전히 헷갈리는데- 그가 진짜 사이코패스라고 해도 <덱스터>의 이야기들이 모두 이해가 되는 지점이다.
성격과 인격의 구분은 서사를 창작하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그러나 흔히 잊기 쉬운 구분이다. 성격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인데 반해 인격은 어떤 갈등이나 위기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지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고 (모호하지만) 정의한다. 즉 여전히 캐릭터에게는 갈등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지난 주 읽은 <진단명 사이코패스>의 절망 - 사이코패스는 엄연히 존재하며, 심지어 늘어나는 추세지만 이에 대한 대안은 없다 -과 비교할 때 훨씬 안도감을 주는 내용이기는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요즘처럼 사회 곳곳에, 가정에 폭력이 늘어나는 모습을 생각하면 그다지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