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잘 안그러는데 한창 조급증에 걸려 있을 때는 책을 보면 작가연보를 살피곤 했다. 이 작가는 몇 살에 데뷔했나? 스무살 무렵에 걸작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쓴 입맛을 다시지만, 식탁에서 틈틈히 작품을 쓰다가 늘그막에 데뷔한 작가들을 만나면 그렇게 위안을 받곤 했었다. 구차한 일인 거 안다. 그래도 그땐 그게 위안이 됐다.
이제는 이런 저런 알리바이도 통하지 않는 나이가 돼 버렸다. 내가 누구에겐가 위안이 될 수도, 위안을 받을 사람 찾기도 쉽지 않은 나이가 돼 버렸다고 생각하는 중인데 마쓰모토 세이초를 만나버렸다.
그가 나이 40줄에 등단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마흔에 등단해서 여든셋에 죽기까지 천여 편의 장단편을 썼다는 사실, 그 사실에 어떤 진실을 얼핏 보고만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미친 듯이 써 나갈 준비가 되었기에, 그에게는 마흔에 등단을 했든, 설사 쉰에 등단을 했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거라는 거. 결국 삶의 태도의 문제라는 거.
글의 분량만 많은 게 아니라, 글도 좋아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필력에, 사회파 미스터리의 아버지라고 불린단다. 미야베 미유키가 자신의 스승으로 삼는 사람이라니 말 다했지. 아직 그의 소설은 보기 전이고, 르포도 소설도 아닌 글들을 읽기는 했지만,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현실과 사람을 파고들며 글을 써 나갔는지 충분히 느끼게 해준다.
그나저나 거의 한 달 만에 읽은 책인 듯. 책상에는 마쓰모토 세이초 전집이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 읽을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