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자카르타 2017. 4. 16. 23:32




읽는 내내 영등포가 겹친다. 돈 때문에 도시 재생, 마을 만들기 사업에 뛰어드는 활동가들의 한계를 얘기하는 지점에서는 딱 내 얘기다 싶어 부끄러웠다. 도시 재생과 거버넌스를 바라보는 행정의 한계야 익히 지적된 것이지만, 나 자신 역시 지역을 보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돈 때문에 돈이 마련해 준 상황에 끌려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과연 주민들에게 나는 어떤 인상을 남겨놓고 나왔을까? 이후 비슷한 일로 지역에 들어가는 활동가들에게 주민들은 어떤 선입견을 갖게 될까? 마음이 무겁다.

 

공무원들과 우리 팀원들에게 종종 그랬다. ‘낯선 길로 가면 다 초보운전이지 않냐?’ 내 시행착오를 무마하려는 의도도 얼마 있긴 했지만, 낯선 지역, 낯선 상황, 낯선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게 되는 지역의 일이란 정답이 없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기도 했다. 문제는 초보운전에 그치고 말았다는 점이겠지.

 

이 책은 지역에서 초보딱지를 뗀, 베테랑 선수들이 마을 만들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시 선수들이라 짚어주는 지점들도 명확하다. 돈 때문에 정작 관계며 사람이며 남지 않게 된 상황들에 대한 지적, 도시에서 마을이란 게 가당키나 하며, 타당한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 주민 혹은 시민이 주체가 되기 위한 방안들, 관변단체 등 풀뿌리의 보수성과 탈색된 마을만들기의 정치색, 마을 안에서 또 소외되는 소수자의 이야기까지, 당장 영등포에도 적용할 수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때문에 산만하고 반복되는 듯도 싶고, 이렇다할 결론 없이 급히 마무리하는 듯 해서 싱거운 면도 있지만 제목처럼 이거다 싶은솔루션이 애초에 있을 리가 만무한 일. 읽으면서 고민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책 읽은 보람이다. 그래도 얼마간 기웃거린 주제들이라 대부분 익숙한 문제들인데 반해 한 채윤 씨가 들려주는 마을 안에서의 성소수자의 소외의 문제가 그중 좀 더 새로웠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줬다. 몸의 아픈 부위가 몸의 중심이듯이, 사회에서 통증을 느끼는 이들의 시선이야말로 사회를 관통하는 시점을 제시해주는 것 같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잘 잡히지 않아 아쉬웠는데, 쓰면서 생각하니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지 않나 싶다.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에서 모두는 누구를 말하고, ‘마을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원점에서 되짚어보자는 얘기겠지. 그럼 질문을 바꿔볼까? 모두를 위한 도시재생은? 당연히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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