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드라마를 능가하는 셰예라자데의 막장 필력이 일취월장이다. 1권과 2권에서는 고전 설화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면 3권에서는 좀더 근대 다운 인간형을 보여준다. 좀 더 다층적인 개인의 욕망이 드러나고 캐릭터들도 한층 다채롭다.
1, 2권과는 달리 셰에라자데의 동생이 이야기를 청하는 반복 장면이 많이 생략됐다. 4권에 들어가면 아예 날이 바뀌는 것을 생략하고 액자 속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런 형식을 바꿀 때마다 저자인 앙트완은 독자들과 쌍방향 소통을 하는 것처럼 군다. 이러저러한 독자들의 리뷰가 있었고, 그에 따라 어떻게 바꾼다. 상당히 흥미로운 구성이다.
3부의 특징을 하나 더 꼽자면 장르가 훨씬 다양해졌다. 공포, 코미디, 멜로 등 캐릭터가 다양해지면서 장르도 분화한다. 그리고 일단 길이도 상당하다. 캐릭터의 다양화와 분량의 증가가 서로 연관이 있을 텐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이어진다. 오죽하면 셰예라자데가 새 이야기를 시작하면 술탄은 잠시 고민에 빠진다. 왕비의 이야기가 너무 길다며.
3부에 들어서야. 한 열 달이 지나서야. 왕의 마음이 셰예라자데를 향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왕도 징한 놈이고, 열달 동안 이야기를 끌고가는 필력을 가진 왕비도 대단한 여자다.
<천일야화>를 통틀어 여성을 소유물로 취급하고 사악한 존재로 그리는 관점이 있기는 한데. 3부의 가장 마지막 이야기는 너무 심하다. 처음에는 남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로 가더니 중반에는 패륜으로 치닫고, 마지막에는 말도 안되는 가족 모임을 만들어 화해시킨다. 그 화해에 여성들이 배제된 것은 물론이고. 지금 왕이 아내의 불륜 때문에 열받아 왕비를 갈아치우고 있는데 그런 얘기를 들려줘도 될까 싶은 정도로 수위가 높은 얘기들이다.
전에 <두 엄마>인가? 나오미 왓츠가 나오는 헐리웃 영화인데 두 엄마가 서로 상대의 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있다. 그 것과 똑같은 이야기도 있고, 헐리웃에 종종 쓰이는 이야기의 원형들도 많이 보인다.
<천일야화>는 전부 e-book으로 읽고 있다.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물성의 빈자리가 허전하지만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있다. 올해 가볍게 읽을 책들은 모두 e-book으로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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