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꽤 새로운 공포를 봤다. 이 영화가 공포를 자아내는 방식에 대해서는 찬찬히 생각해 봐야겠다. 오늘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는 내가 싫어하는 <곡성>과 이 영화를 비교하던데, 거기엔 동의가 안 된다. 내가 <곡성>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낯선 존재와의 접촉, 가족의 일상에 균열이 일어난다 등에서 벗어나는 공포영화가 어디 있을까.
오히려 이 영화가 신선한 것은 3대에 걸친 저주를 현 시점의 단면으로 탁월하게 압축해 냈던 데에 있지 싶다. 흔한 플래쉬백도 없이 회고로 과거 관계를 압축하는 것도 훌륭하고, 대화를 통해 관계를 명쾌하게 드러내는 것도 훌륭하다. 찰리가 죽는 장면과 그 이후 가족들의 반응을 담은 씬은 근래 본 영화 중 최고의 연출력인 듯 싶다. 같이 본 사람이 있으면 장면 장면 요리조리 뜯어볼 텐데, 같이 사는 사람이 공포영화라면 질색팔색이라.
<로즈마리의 아기>와 같은 결말은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이런 설정이 이토록 끈질기게 살아남는 이유는 뭘까? 그냥 이들의 파국이 유전되는 조현병이었다거나 딸을 잃은 엄마의 광기라며 끝내면 무리가 있었을까? 두려움의 이유가 설명이 안 됐으려나? 무언가는 악한 존재로 드러나야 현재의 불안과 공포가 설명이 되는 걸까? 그러나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악령 파이몬도 결국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빈껍데기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