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는 했지만 막상 읽으려니 뻔한 얘기이지 않을까 짐작했었는데 읽은 보람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재난에 더욱 취약하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겠지만, 저자는 재난이 일어나기 전과 재난 시 그리고 재난 후 복구로 나누어 각각 불평등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 설명한다.
1장에서 저자는 우선 '재난' 그 자체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다. 재난은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다. 홍수로 땅이 비옥해지거나 지하수량이 풍부해지는 것처럼 경제적인 면을 놓고 보더라도 재난 복구 시기에 더 큰 성장률을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가 재난에 은유가 아닌 그대로 적용될 수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2장부터 저자는 재난의 피해를 확대하는 요소를 지적한다. 재난에 대비한 법규를 집행하지 않으면서 급속히 성장하는 도시에서는 지진이 아니라 건물에 의해 사람이 죽고, 과학이 아닌 '과학스러움'(과학을 가장한 의견과 주장들)이 대규모 인명 피해를 불러온다.
3장부터 6장까지는 아이티와 미얀마, 뉴올리언스 등 최근 벌어진 재난 현장 상황을 전한다. 앞서 저자가 구분한 재난의 세 가지 단계에서 저자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단계는 재난 복구 시기이다. 아직도 지진과 같은 경우는 재난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태풍과 쓰나미의 경우 선진국들은 최첨단 컴퓨터로 예측과 경보 체계를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미얀마 삼각지를 강타한 태풍의 경우 선진국의 경고에서 미얀마 군부 정권은 이를 무시했다. 무시하지 않았어도 지자체와 현지 당사자에게 이를 경고할 체계가 없었다고 한다.
언론과 대중은 재난 시기 또는 직후의 피해를 자극적으로 유통시키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정작 '이전보다 나은 복구'를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기대와 상식과는 정반대로 흘러간다.
책의 중반부터 결말까지 저자가 가장 집중하는 것이 바로 이 복구 부분이다. 미얀마 군부는 피해 사실을 국제 사회에 감추기 급급할 뿐, 피해자를 위한 조치를 전혀 실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재난 이후 현지의 토지를 약탈하는 과정이 진행됐을 뿐이다.
아이티의 경우 유래없는 피해에 유래없는 원조가 집중되었지만 이 가운데 97퍼센트는 미국의 기업들이 수주했다고 한다. 복구의 순서도 피해가 가장 큰 슬럼가는 가장 후순위로 밀렸다. 이런 부조리가 가난한 저개발 국가에서만 벌어지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뉴올리언즈의 사례는 부유한 나라 안에서도 빈부에 따라 어떻게 차별과 배제가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여러 사례들이 제시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지도층의 공황'이다. 홍수가 나고 마트에서 생필품을 가지고 나오는 흑인의 사진 아래는 '약탈'이라 쓰고 백인들의 사진 아래는 '구하다'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이런 인식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홍수 직후 언론의 보도에는 흑인의 강간과 살인, 약탈과 방화가 대거 보도되었지만 실제로는 이를 두려워한 백인 자경단들의 처형이 더 많았다고 한다. 바로 하층민들이 체제를 엎어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지도층들의 공황이 양극화된 사회에서 재난 이후에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고, 여러 조사를 근거로 제시한다.
뉴올리언즈의 복구 당시 입안자들은 돌아올 주민들의 수에 따라 복구의 우선순위를 나누겠다고 했단다. 이는 흑인 밀집지역의 흑인 비율을 줄이려는 꼼수였다. 이 모습에 재개발을 하면서 재입주율을 높이겠다며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고 정작 임대료나 집값은 원주민이 재입주할 수 없게 만드는 우리네 재개발이 연상된다.
재난 불평등이란 제목은 부정확하다. 오히려 불평등의 재난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게다. 이번 코로나 때도 확인된 것이지만 사회의 불평등이 재난의 피해도 불평등하게 끼친다. 양극화의 아래 극단에 있는 이들이 그나마 버티는 것은 이미 그들은 재난 속에서 살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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