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긴장감 넘치는 글쓰기를 위한 아이디어

자카르타 2021. 8. 29. 14:40

 

유명 작가들의 글쓰기 책을 읽을 때, 쿵후허슬의 주성치처럼 막힌 혈을 뚫어서 숨겨진 글쓰기 신공이 발휘될까 하는 은근한 기대를 가졌다면 곧 실망하게 된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도 이 부분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들어간다. '...재미있는 책을 어떻게 써야 할지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글쓰기 책들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스티븐 킹이 얘기했던 것처럼 '벽에 기다란 쇠꼬챙이를 꽂아놓고 퇴짜맞은 원고들을 쌓아나가라'는 메시지의 반복이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수 백 페이지를 채운 글쓰기의 고단함에 나는 얼마나 근접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일 듯 싶다. 그에 비하면 나머지는 소소하다.

 

소설을 굳이 정통과 미스터리를 나눠 차별하는 미국 문단에 대한 그의 푸념도 재밌고, 작가 주변 일상의 소재에서 시작하라는 이야기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결국 보편적인 작법의 문제라기 보다는 작가의 개성의 문제라는 얘기나 글을 쓰면서 작가가 가장 즐거워야 한다는 얘기엔 나를 돌아보게 된다.

 

반복하게 되는 모티브가 있어서, 퍼트리샤의 경우는 라이벌인 두 남자의 얘기를 거듭하게 된다고 한다. 결국 진부한 모티브란 없고,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의 문제라는 얘기. '일반적으로 사교의 지평은 창조의 지평이 아니며'라는 얘기나 '... 우리가 매력을 느끼거나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때로는 고무 절연재만큼이나 효과적으로 영감의 불꽃을 차단하기 때문이다.'라는 얘기에선 '리플리'에서 묘사한 사교계의 모습이 겹친다.

 

퇴짜 맞은 원고에 대한 '애도 기간'을 얘기하는 부분에서는 쉽게 공감이 가지 않았다. 퍼트리샤 정도면 거의 무명 시기는 없었다고 봐야하는 거 아닌가? 대신 플롯 보다 감정을 강조하는 부분은 특히나 요즘 내가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부분이어서 크게 공감이 갔다. 작가는 이 때문에 개인적인 경험이 중요한 재료로 쓰일 수 있다고 한다.

 

'긍정적이고 애정 어린 감정들로부터 창작하는 편이 훨씬 더 쉽다. 질투란 좀먹기만 할 뿐 아무것도 주지 않는 암과 다를 바 없어서' 복수는 나의 힘이 될 수 없나보다.

 

캐릭터의 전사를 쓰라는 충고에서는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의 인물들의 전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번 책 읽기에서 도움을 얻었다면 바로 이 부분이다.

 

작가들의 글쓰기 책은 늘 그렇듯이 산만하다. 거기서 로버트 맥기 할아버지의 인지, 인식, 윤리, 욕망에 대한 이론을 기대하는 건 애초에 무리다. 오히려 그에 대신해서 작가가 글을 쓰면서 느꼈던 희노애락이 훨씬 공감이 가면서 다시 이면지가 될 운명이라도 글을 쓸 용기를 내게 된다. 리플리 시리즈가 있다는 얘기는 처음인데, 그 시리즈나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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