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나는 왜 내가 힘들까

자카르타 2021. 10. 3. 23:07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최초의 사람 즉, 아담과 하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 책은 딱 잘라 말한다. '자아'를 갖게 된 사람이라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스스로 벌거벗었음을 인식하게 된 것처럼, 인류가 '자기 인식'이란 걸 하기 시작한 것이 어림잡아 4~6만년 전이라고 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curse of the self, 우리말로 하면 '자아의 저주'다. 저자인 마크 R. 리어리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가 '자기 인식'을 얻고 수치심을 느꼈던 것처럼, 현대 인류는 자아 때문에 여러 고통 속에 살고 있는데 이는 자아의 특성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자신의 관점에서만 상황을 판단하는 '자기중심적 경향', 자신을 남들보다 높이려고 하는 '자기고양적 경향', 그리고 자신의 안위와 이익만 생각하는 '자기본위적 경향'으로 인간은 자신의 삶과 사회에 갖가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류가 자아를 발전시킨 것은 진화 과정에서 꽤나 유용했다. 자아가 있었기에 인류는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고, 자신을 판단하고,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추측할 수 있었다. 빈약한 신체를 가진 인류가 지구 최고의 포식자가 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능력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 과정을 초월한 변화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현대 사회다. 복잡 다단한 현대 사회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측하고 선택하고 결정할 것이 많아졌다. 당장 코앞만 신경썼던 수렵 시대나 루틴의 반복이었던 농경 사회와는 차원이 다른,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아는 부질없이 스스로를 괴롭히고, 오작동을 일으키게 한다. 결국 인간은 수만년 전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로 최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얘기다.

 

책의 상당 부분은 이 주장들을 설득하느라 공을 들인다. 동물과는 달리 오직 인간만이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불안해하며 잠 못들고, 나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남의 평가에 연연하고, 자기 능력에 대한 오판으로 실수를 저지르는 등의 사례를 촘촘히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저자는 '자아 꺼두기'를 권한다. 맨 인 블랙의 외계인처럼 머리 속 한 가운데 들어앉아 끊임없이 속삭이는 자아를 끄는 연습을 하라는 얘기다. 진단에 비해 처방이란 것이 너무 허무한 듯 싶기도 하지만 내 '자아'란 것이 고정불변의 정체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자극과 욕망의 덩어리라는 점을 구별하는 시선을 얻는 것만으로도 꽤나 위안으로 삼을 수 있겠다.

 

늘 심리학 책을 읽고나면 뭔가 허기가 도는데, 이 책 역시 그렇다. 앞의 두 챕터, 제일 끝의 한 챕터만 읽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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