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7개 지역의 도시재생 사례를 다룬다. 우리 도시재생 현장에서 '주민 참여'를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공공에서 세운 비전과 계획에 부응하는 '참여'만 인정되는 반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례들은 민간과 공공이 어떻게 합을 맞춰 나갔는지 설명한다.
'하르레머 거리'는 지역에 대한 어떤 권한도 갖지 못한 개인 컨설턴트가 중심이 되어 골목 상권을 살린 사례다. 다년 간에 걸친 지역 활동으로 신뢰를 쌓아나갔고, 이제는 지역 임대인들의 그에게 컨설팅을 의뢰할 정도라고 한다. 최근들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부각되고 있지만, 쉽게 성공과 실패를 재단하지 않고, 도시의 생장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대안을 모색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두번째는 아른햄 패션 특화 거리다. 패션 관련 학교가 있어 상당한 인지도를 갖고 있음에도 낙후되던 곳을 주택협회와 민간이 협력하여 이름에 부합하는 실체를 갖춰나간 사례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전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기 위해서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under the radar 전략을 취했다는 점이다. 이 역시 단기 프로젝트로 정해진 결과와 성과를 강조해야 하는 공공 주도에서는 취하기 어려운 전략이다. 아른햄의 경우 주택협회가 자원을 가진 든든한 파트너 역할을 했지만, 이런 유연한 접근을 허용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
2018년에 네덜란드와 독일 도시재생 사례를 보러갔을 때 신선했던 것은 스쾃이었다. 무단 점유를 통해 예술인들은 자신들의 거점을 스스로 마련하고 정부는 그들의 권리를 인정해 주고 있었다. 이 책에서 세번째 소개된 오버툼도 스쾃으로 시작된 사례다.
저자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1년 이상 비어 있는 공간의 경우 제도로 무단점유를 인정해주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2018년 답사 때도 느낀 것이지만 제도보다 훨씬 폭넓은 관용이 있다. 오버툼의 경우에도 제도로 인정하는 대상은 아니었지만 결국 예술가 조직인 EHBK에 정부에서 대출과 지원금을 지원해 공간 매입까지 가능하게 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하위 문화 없는 문화는 없다는 인식을 암스테르담 시민들이 공유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예술인들이 어떻게 조직된 힘을 가질 수 있었는지, 어떻게 공간을 운영할 수 있었는지는 세세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다른 사례에서도 마찬가지로 부단한 토론과 시행착오와 개선의 반복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일시적 활용 temporary use'다. 공공과 시민들이 숙고 과정을 거침에도 공간 활용에 대한 중지가 모이지 않았을 때 이들은 다양한 실험을 보장할 수 있도록 '일시적 활용' 기간을 두었다.
이 책의 다섯번째 사례로 나온 더 할런과 여섯번째 사례인 더 퀴블이 그렇다. 더 할런은 트램 차고지가 '96년 문을 닫으면서 그 후 10년간 일시적 활용 시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모색을 한 곳이다. 이 사이에 대형 주거지, 고층 빌딩 등 다양한 계획들이 오갔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세계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계획이 무산되기도 한 덕도 봤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일시적 활용' 시기에 의견 수렴 기구인 '사운딩 그룹'을 활용해 지속해서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나갔다는 점이다.
2018년에 이곳에 갔을 때 차고지가 갖는 장점 - 줄줄이 곧게 뻗은 레일을-을 살려 골목을 만들고 그 옆으로 스타트업, 주민 편의시설, 호텔과 같은 관장 자원들을 배치해 놓아, 꽤나 북적이는 활기찬 거리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 기억 난다.
더 퀴블은 1300평 정도의 비교적 작은 규모인 폐조선소에 들어선 거점 공간이다. 조선소로 쓰인 탓에 오염된 땅을 정화하는 조건으로 2012년부터 10년간 무상 임대를 공모했고, 뜻이 맞는 예술인, 건축가 등이 모여 조성한 공간이다. 이곳 하면 떠오르는 것은 토양을 효율적으로 정화하기 위해 건물과 건물 사이의 도로는 지상에서 1미터 띄운 데크로 조성해 놓고 건축 비용을 아끼기 위해 폐선해야 하는 보트로 사무실을 조성한 것이었다.
이제 내년이면 10면 무상 임대가 끝이나는데 암스테르담은 또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진다.
네번째 사례로 소개된 169 클뤼스하위즌은 국내 방송에서도 소개되 봤던 것 같다. 1유로에 집을 분양하는 조건으로 입주민들이 폐 건물을 스스로 수리하는 프로젝트였다. 개인별로 10만 유로 이상 수리비를 감당해야 했지만 스스로의 노동력을 얼마나 투여하는지, 자신의 공간을 어떻게 고치는지에 따라 크게 아낄 수도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일곱번째 사례는 버려진 항구 창고를 주거시설과 푸드 마켓으로 바꾼 페닉스 푸드 팩토리다. 로테르담 시 정부는 창의적인 활용을 위해 역시 일시적 활용으로 실험을 진행했고, 여기에 참여한 그룹들이 식당가를 조성하고, 공동 운영을 위해 조직을 만들고, 주민들과 소통하고 공간을 알리기 위해 공동체 프로그램을 돌린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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