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요즘 유난히 산만해서 책을 읽어도 도무지 뭔 내용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책도 역시 그랬다. 이전 같으면 그냥 책꽂이에 꽂아뒀을 텐데 다시 첫장으로 돌아갔다. 이런 책, 지식을 얻자고 보는 것도 아니고 마음의 평안을 얻자고 보는 책인데도 뭔가 정복자처럼 눈길만 훑고 애정없이 지나가기가, 내 자신에게도 이 책에게도 미안하고 아쉬웠던 모양이다.
역시 두 번 읽으니 그나마 눈에 마음에 남는 내용들이 꽤 있다. 이 책은 14대 달라이 라마와 하워드 커틀러라는 정신과 의사가 주고받은 문답을 커틀러 자신의 이해와 지식을 곁들여 엮어낸 책이다. 질문으로 대화를 이끌어가고 또 풀이하는 사람도 커틀러이니 아무래도 달라이라마 사상의 윤곽보다는 서양인의 관으로 한번 필터링 된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초심자의 눈으로 풀었으니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상당히 모호하게 들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행복에 이르는 길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처방은 한마디로 '마음 수행'이라는 단어로 집약이 된다. 자신을 괴롭히는 부정의 생각들 염려들 미움들을 제거해야 행복에 이를 수 있으면 이를 위해서는 긍정의 마음을 자꾸 불러들이는 키우는 수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상이나 상황에 따라 몇 가지 다양한 변주들이 있다. 또 자잘한 세부 단계로 나뉘기도 한다.
너무 젠체하는 어려운 고담준론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고 커틀러가 쉽게 번역한 이 이야기들은 어떨 때 보면 맥없이 들리기도 한다. 미움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관용의 마음을 불러들여야 한다는 것이 너무 순진하게 들려서가 아니라 동어반복같기 때문이다. 관용을 갖지 못해 미워하는 마음이 드는 사람에게 관용을 가지라니!
그러나 또 달리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것들,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에 대한 강조와 반복이 사라지면서 우리 삶이 자꾸 복잡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달라이 라마가 그 당연한 것들에 대한 인지, '앎'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지.
너무 당연한 좋은 얘기들만 가득해 두번 연거푸 읽었음에도 뭔가 마음에 맺히는 것이 없다. 책의 문제라기 보다는 내 개인의 문제겠지만 이 책이 또 주장하는 것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행복이란 그리고 그 행복에 이르는 수행이란 책 한 권 뗀다고 통달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아무튼 달라이 라마는 대면했을 때의 아우라가 궁금하게 만들었고, 책의 내용으로는 커틀러의 임상 기록들이 오히려 생생하게 다가왔다. 하긴 남의 임상들 백날 들여다봐야 뭐하겠노. 차라리 성인의 영성에 한 번 전율하는 것이 낫지. 커틀러 역시 시종일관 그 전율을 소개하려고 했지만 매체에 담기는 메시지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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